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폭행·협박의 수준을 엄격하게 해석해 온 대법원 판례가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받게 됐다.
현행 판례상 강간죄의 성립요건은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으로, 이른바 '최협의(最狹義)설'이다.
대법원은 1979년 판결 이래 이런 최협의설 판례를 유지해왔는데, 이는 피해자가 원치 않는 성관계였더라도 폭행·협박의 정도가 '현저히 곤란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법이 현실의 성폭력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3분의 2 이상)이 모여 심리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만약 이번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기존 폭행·협박 기준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법리를 세우기로 결정한다면 종전 판례는 최종 폐기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오는 22일 첫 심리를 진행한다.
이 사건 1심은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행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기존 대법원의 최협의설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판단이었다.
검찰이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공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앞서 강제추행죄의 판단 기준을 완화한 만큼 이번에도 판례 변경이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23년 9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40년 만에 강제추행죄의 '최협의설'을 공식 폐기했다. 당시 대법원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더라도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 행사나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 고지가 있었다면 추행죄가 성립한다고 판시 기준을 낮춘 바 있다.
아울러 유사강간죄 성립에 최협의설을 적용한 하급심 판결 역시 현재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라 있다. 헌재는 지난 6월 '동의 없는 성폭력' 피해자가 무죄 판결 취소를 구하며 낸 재판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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