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 칼럼] 빚 갚기는 바보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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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세무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초과세수로 국채를 갚자는 주장을 "바보 같은 짓 중 하나"라고 했다. 그 말은 그대로 예산안이 되었다. 내년 국가채무는 106조원 늘어나고, 그 가운데 104조원은 쓸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미래대응기금에 현금으로 쌓인다. 헌법 제58조는 국채를 발행하려면 미리 국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정한다. 어디에 얼마가 모자라는지를 국민의 대표가 확인한 뒤에 빌리라는 뜻이다. 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국채 발행에 대한 의결은 백지 서명에 불과하다. 빚을 갚는 것과 빚을 내어 현금을 쥐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어리석은지는 투자자의 셈법이 아니라 재정의 원리로 가려야 한다.

빚을 갚는 것은 수익률이 확정된 선택이다. 국고채 조달금리가 4%라면 1조원을 갚는 것은 해마다 400억원을 틀림없이 버는 것과 같다. 이 수익에는 위험이 없고 운용 수수료도 없으며, 손실을 메워 줄 사람도 필요하지 않다. 국채 금리를 넘는 수익은 모두 위험을 떠안은 대가이며, 그 위험이 현실이 되는 날 손실은 미래의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확정된 4%를 버리고 불확실한 4% 이상을 좇는 선택을 지혜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 큰 이유는 재정 여력에 있다. 국가채무는 2019년 729조원에서 올해 1413조원으로 7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되었다. 빚은 어려울 때 내는 것이고, 어려울 때 빚을 낼 수 있는 힘은 평시에 갚아 둔 빚에서 나온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 국가채무비율은 11%대였다. 그 여력이 있었기에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조달해 금융을 살릴 수 있었다. 독일은 2010년 82%였던 채무비율을 2019년 60%까지 낮추었고, 그 덕에 2020년 한 해에만 2750억 유로를 빌려 코로나 위기에 대응했다. 우리도 그해 네 차례 추경으로 67조원을 편성해 대부분을 국채로 조달했는데, 당시 채무비율은 40% 안팎이었다. 같은 위기가 채무비율 50%를 넘긴 뒤에 온다면 시장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대응의 폭은 그만큼 좁아진다. 지금 빚을 일부라도 갚는 것은 돈을 묶어 두는 일이 아니다. 다음 위기에 더 싸게, 더 많이, 더 빨리 빌릴 수 있는 권리를 미리 사 두는 일이며, 재원 조달의 융통성을 최대로 넓히는 일이다. 세수가 역대 최대로 늘어난 해에 그 권리를 사지 않는다면 언제 사겠다는 것인지, 정부는 답하지 않고 있다.

빚을 내어 현금을 쌓고 그 이자를 투자 수익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은 재정학 교과서 어디에도 없다. 올해 7월 국고채 조달금리는 4.07%였고, 정부가 제시한 기금의 목표 수익률은 3.85%다. 출발부터 역마진이다. 위탁 수수료와 운영비를 더하면 4%대 중반을 벌어야 본전이고, 본전을 넘기려면 위험자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빚을 내어 위험을 사들이는 셈이다. 세계의 미래기금 가운데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은 없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유 수입으로 적립하고 자국 자산에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으며, 예산으로 가져다 쓰는 돈도 기대 실질 수익률인 연 3% 안으로 묶어 둔다. 칠레 경제사회안정기금은 결산에서 확인된 실제 흑자에서 국채 상환액을 뺀 돈만 적립하고, 해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한다. 호주 미래기금은 재정 흑자와 공기업 매각 대금으로 출발했다. 셋 모두 남는 돈을 쌓았고, 쌓은 돈으로 자국의 자산 가격을 떠받치지 않았다. 빚을 내어 투자한 기금의 사례를 굳이 찾자면 말레이시아의 국영 투자기금 1MDB(1Malaysia Development Berhad, 1말레이시아개발공사)가 있다. 정부 보증 채권으로 돈을 모아 수익을 좇은 그 기금이 남긴 것은 국가적 손실과 형사 재판이었다. 우리 기금이 가려는 길은 노르웨이보다 이쪽에 가깝다.

위험은 수익률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시장의 규칙을 만들고 인허가를 내주고 감독하는 심판이다. 심판이 100조원을 들고 선수로 뛰면 경기는 망가진다. 기금법 제13조는 유가증권 매매를 허용하고 나머지는 대통령령에 맡겼다. 국내 자산 투자를 막는 조항은 없고, 손실은 적립금으로 메운다고만 적혀 있다. 이 조합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일랜드가 보여 주었다. 아일랜드 국민연금준비기금은 해마다 국민총생산의 1%를 적립해 온 모범적인 기금이었으나, 금융위기가 닥치자 재무장관의 지시로 자국의 두 은행에 206억 유로를 넣었고, 2년 뒤 그 평가액은 절반으로 줄었다. 규칙이 없는 기금은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정치의 금고로 전락한다.

가장 경계할 것은 이 돈이 주가를 떠받치는 데 쓰이는 일이다. 1990년대 일본 정부는 우체국 저축과 간이보험 등 공적자금을 동원해 주가를 지탱하려 했다. '가격 유지 작전'이라 불린 그 시도는 거품의 붕괴를 막지 못했고, 시장을 왜곡했다는 오명만 남겼다. 반도체 호황으로 달아오른 지금의 우리 증시에서 같은 유혹은 더 크다. 그러나 이 기금의 재원은 미래세대가 갚을 빚이다. 주가가 오르면 이익은 주식을 가진 현세대에게 돌아가고, 주가가 내리면 손실은 주식을 갖지 못한 다음 세대의 세금으로 메워진다. 재정이 특정 자산의 가격을 지키는 것은 재분배 가운데 가장 역진적인 재분배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미래세대의 세금으로 현세대의 투자 이익을 지키는 주가 부양에 나선다면, 그것은 한국 재정사 최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재정 당국의 선택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세수가 49% 늘어나는 해에 적자 때와 같은 규모의 빚을 내는 데 앞장선 곳은 재정을 지켜야 할 바로 그 부처다. 호황의 정점에서 늘린 빚은 호황이 끝나는 순간 이자와 원금으로 되돌아오고, 그때 이 선택의 책임은 결산과 국정감사의 기록 위에서 엄중하게 물어질 것이다.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재정 건전성을 내세워 지출을 막던 부처가 세수 초호황기에 빚을 앞장서 늘린 이유를, 그 부처는 언젠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책임을 묻는 일은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국은 정부가 전망치를 입맛대로 다룬다는 불신 끝에 2010년 독립 재정기구인 예산책임청(OBR)을 세웠고, 아일랜드는 재정 붕괴를 겪은 뒤 2011년 독립 재정자문위원회를 두었다. 재정 당국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사회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재정기구를 요구하게 된다. 이번 예산안은 우리 사회가 그 기구를 더는 미룰 수 없게 만든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에서 세 가지를 요구해야 한다. 적립은 빚이 아니라 결산에서 확인된 흑자로 한다. 운용은 국채와 예금으로 한정하고, 주식과 위험자산 투자는 법으로 금지한다. 관리는 정치로부터 독립된 기구에 맡기고, 적립과 인출과 운용의 내역을 상시 공개한다. 이 세 가지가 없는 기금은 미래를 위한 저축이 아니라 현 정부가 열쇠를 쥔 금고다. 빚을 갚는 것은 바보짓이 아니다. 세수가 넘치는 해에 쓸 곳도 정하지 않은 국채에 서명하는 것이 바보짓이고, 그 빚으로 수익을 좇는 것은 바보짓을 넘어 위험한 일이다. 국회는 그 서명을 거부하고 예산안의 전면 재편성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거부하지 않으면, 그 서명의 대가는 다음 세대가 치른다.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서울시립대 세무학과·세무전문대학원 교수▲한국재정학회 회장 ▲ 전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예산정책처 조세분석심의관 ▲전 지방규제혁신위원회,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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