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와이드 사설 | 국제정세와 대한민국의 미래] 프랑스의 분노는 남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가재정과 교육부터 바로 세워야

  • 국가채무는 미래세대의 부담, 교육은 국가의 미래… 민생을 지키는 재정개혁과 정치적 합의가 절실하다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에서 생활비 및 연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복면을 쓴 시위대가 불타는 자전거 옆에 서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에서 생활비 및 연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복면을 쓴 시위대가 불타는 자전거 옆에 서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가 분노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온 프랑스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7일 전국적인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정부 추산 55만 명, 노동조합 추산 80만 명에 이른다.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등 주요 도시에서는 일부 시위대의 방화와 약탈까지 발생했다. 프랑스 사회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불신이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분노의 출발점이 학교였다는 점이다. 교사가 부족하고 학교시설이 낡았으며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는 학생들의 항의가 노동자와 서민들의 생활비 불만으로 확산됐다. 교육에 대한 불신이 민생의 불안과 결합하면서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발전한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9월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1.3% 상승했다. 정부가 제시한 2027년도 재정 개선 조치는 430억 유로 규모다. 국가채무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119.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는 정부와 생활의 안정을 요구하는 국민 사이에서 정치적 타협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프랑스의 시위를 모두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화적인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방화와 약탈, 공공시설 파괴는 용납될 수 없다. 동시에 폭력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과 시민들의 정당한 정책 요구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정부가 불법행위를 제재하는 것만으로 교육과 민생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 사태를 유럽의 정치적 혼란 정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프랑스와 한국은 경제구조도, 복지제도도, 재정 여건도 다르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은 같다. 국가재정이 지속 가능해야 복지를 지킬 수 있고, 교육이 바로 서야 미래를 지킬 수 있으며, 정치가 신뢰를 얻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
 
프랑스 시위 진압하는 경찰관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시위 진압하는 경찰관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첫째, 국가채무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국가채무는 무조건 나쁜 것도, 무조건 늘려도 되는 것도 아니다. 경기침체와 재난에 대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재정 투자는 필요하다. 문제는 빚을 어디에 사용하고 누가 그 부담을 감당하느냐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공공부채가 2027년 GDP 대비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안심할 근거는 아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해 있다. 연금과 의료, 돌봄에 필요한 재정 지출은 장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재정 결정이 미래세대의 조세 부담과 국가의 정책 선택을 좌우한다.

정부는 국가채무의 총량뿐 아니라 증가 속도와 이자 부담, 지출의 생산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특히 국가채무와 공공기관 부채, 연금의 장기 재정 부담을 구분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중장기 재정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재정준칙 역시 경기 대응의 유연성을 인정하되 평상시에는 채무 증가를 통제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육재정은 단순한 지출 항목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투자라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프랑스 시위가 보여주듯 교육의 기본 기능이 흔들리면 국가에 대한 청소년의 신뢰부터 약해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사교육 부담,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예산을 기계적으로 줄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과거의 예산 배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교육재정의 중심을 학생 수에 따른 단순 배분에서 교육의 질과 형평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원 배치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노후 학교시설을 정비하며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여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디지털 문해력과 과학·수학·인문교육을 균형 있게 강화해야 한다. AI를 활용하는 능력만큼 인간의 존엄과 자유, 비판적 사고를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셋째, 민생을 보호하는 재정개혁이 필요하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취약계층에 부담을 집중시키거나 필수적인 교육·의료·돌봄 서비스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계층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효과가 낮은 보조금과 중복 사업, 실효성이 부족한 조세감면부터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서민의 에너지 부담과 주거비, 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은 지원 대상과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해 추진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재정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넷째, 국가적 개혁에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재정 위기가 심각해진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분열된 의회와 취약한 정치적 타협 구조가 있다. 한국 역시 연금과 의료, 교육, 노동, 재정 문제를 정파적 이해관계만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정부의 예산을 심의하고 감시하는 헌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개혁의 필요성을 숫자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부담과 혜택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여야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필수 공공서비스를 유지하는 문제만큼은 정쟁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
 
프랑스 국기를 든 시위대 사진EPA·연합뉴스
프랑스 국기를 든 시위대 [사진=EPA·연합뉴스]

마지막으로 국가의 재정정책은 성장과 분배, 현재와 미래의 균형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반도체와 AI, 바이오, 에너지, 첨단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모든 사업이 좋은 투자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타당성과 기술적 실현 가능성, 민간투자 유발 효과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성과 없는 사업에 국민의 세금을 계속 투입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의 부담을 키우는 일이다.

프랑스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분노는 단순히 세금을 줄이고 복지를 늘려달라는 요구로만 해석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에게 약속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얼마나 충실히 제공하고 있는지, 개혁의 부담을 얼마나 공정하게 나누고 있는지 묻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건전한 재정 없는 복지는 지속될 수 없고, 양질의 교육 없는 성장은 오래갈 수 없으며, 국민의 신뢰 없는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국가채무는 책임 있게 관리하고,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혁신하며, 민생은 촘촘하게 보호해야 한다. 정치권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의 위대함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느냐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책임 있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오늘의 국민을 보호하면서 내일의 세대에게 더 나은 기회를 물려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프랑스의 분노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위기는 거리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문제를 방치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때 깊어진다. 정치의 책임은 분노가 폭발한 뒤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노를 낳는 구조적 문제를 미리 해결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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