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국의 외교전략은 꽤나 장기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오늘날 외교기반을 다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지 제3세계 국가들과 유대관계는 이미 지난 60~70년대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한다.
중국이 이번에 또 자신의 안방(?)에서 자신감 있는 외교실력을 한차례 과시했다.
바로 지난 11~13일 중국 최남단의 해양섬 하이난다오(海南岛)에서 열린 보아오(博鳌)포럼을 두고 하는 평가이다.
올해 보아오포럼은 국제무대에서 날로 커져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절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사진은 보아오포럼 개막식이 열린 하이난다오의 소피텔 국제회의센터.
이번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의 맹주로 발돋움하려는 외교적 야심을 드러낸 무대였다는 분석이다.
지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후진타오(胡锦涛) 국가주석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각국 정상들을 일일이 맞은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번 포럼에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각국 정상과 대표는 물론 경제관련 전문가, 학자, 기업인 등 39개국 정치•경제 지도자 2000여명이 참가했다.
호주 케빈 러드 총리, 스웨덴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 파키스탄 페레즈 무샤라프 대통령 등 전세계 11개국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미국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필리핀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등도 모습을 나타냈다.
경제계에서는 한국 SK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볼보 리프 요한슨 CEO, 에릭슨 미카엘 트레쇼 회장, 도요타 가스히로 나카가와 부회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보아오포럼은 지난 2001년 이후 양적, 질적에서 모두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날로 커져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한눈에 보여준 현장이었다.
당초 꿈꿨던 ‘아시아속의 다보스포럼’이 ‘세계속의 보아오포럼’으로 위상 변화가 이뤄진 셈이다. 중국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다보스포럼이 부럽지 않다는 자부심마저 갖도록 했다.
올해 7회째를 맞는 보아오포럼의 정식 명칭은 보아오아시아논단(博鳌亚洲论坛). 포럼 주제는 ‘녹색아시아, 변화와 개혁을 통한 공동이익 실현(绿色亚洲 在变革中实现共赢)’이었다.
올해 보아오포럼에는 세계 39개국 정치•경제 지도자 2000여명이 참가해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포럼 주최측이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포럼 롱용투(龙永图) 사무총장은 “녹색아시아는 경제발전의 목표이자 보아오포럼이 희망하는 목표”라며 “’녹색’과 ‘변혁’이라는 목표가 실현된다면 전세계 공동이익도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는 중국이 개혁개방 30주년을 맞는 데다 오는 8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열려 더욱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또 지난달 티베트(시장 西藏) 라싸(拉萨)에서 발생한 독립시위, 대만과 양안관계 등 난제 해결도 중국이 내심 가진 목적이었다.
후 주석은 개막식에서 “중국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정치, 경제 등 면에서 중요한 구성원이 됐다”며 “세계와의 관계속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이뤘다”고 강조했다.
또 호주 케빈 러드 총리는 개막식 축사를 통해 “기후변화는 전세계가 직면한 최대의 도덕적, 경제적, 환경적 문제이자 과학적 도전”이라며 “중국은 과학발전관에 따른 경제사회 발전을 통해 에너지절감과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3일에는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회고와 전망’이란 주제로 특별논단이 마련돼 국내외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서는 지난 1978년 이후 걸어온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에 대해 다양한 평가와 분석이 이어졌다.
후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발전은 세계와 떨어질 수 없고 세계의 번영도 중국과 떨어질 수 없다”며 “앞으로도 중국은 위대한 개혁개방의 대로를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후 주석 연설은 중국의 미래 발전방향을 명확히 천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카자흐스탄 마시모프 총리는 “중국은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개혁개방 실천을 통해 거대한 성공을 이뤘다”며 “‘중국의 기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보아오포럼에서 특별히 마련된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회고와 전망’ 논단은 세계 각국 인사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논단에서 발표에 나선 각국 대표들은 ‘중국의 기적’, ‘불가사의’, ‘역사적 변화’ 등 표현을 써가며 중국 개혁개방 30년을 평가했다.
특히 해외 참석인사들은 ‘중국 개혁개방 성공의 비밀’, ‘지속적인 중국경제의 성장 비결’ 등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또 중국경제의 성공에 대해 ‘경제건설 중심 견지’, ‘점진적 개혁’, ‘사상의 변화’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스리랑카 마힌드라 라자파크세 대통령은 “중국의 놀랄 만한 경제성장은 스리랑카 국민에게도 큰 이익을 가져다 줬다”며 “다른 개발도상국들을 고무시켜 개혁에 대한 희망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또 이란 다라이 외무차관은 “중국은 독특한 발전의 길을 선택해 거대한 성공을 이뤘다”며 “중국의 성공경험은 의미와 가치가 큰 만큼 발전모델과 경제체제가 전세계 개발도상국들에게 본보기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24조6600억위안으로 개혁개방 당시인 지난 1978년보다 무려 67배나 성장했다. 이는 전세계 총생산액의 5%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경제의 세계경제 기여도는 10%, 국제무역 성장 기여도도 12% 등을 넘었다. 또 1인당 GDP는 381위안에서 1만8665위안으로 49배 성장했다.
중국은 이 같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농촌에서 도시, 경제영역에서 정치체제 등 경제•사회•제도 구조면에서도 큰 변화를 이뤘다.
상하이자동차 딩레이 부총재는 “1978년 이전만 해도 중국은 자동차산업에서 거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며 “이제는 연간 생산소비량이 1000만대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이 같은 성장속도는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발전모델로서는 상상할 수 도 없다”고 덧붙였다.
서호주대 모건 교수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국가간 상호의존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은 세계를 필요로 하고 세계는 더욱 중국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하이난개혁발전연구원 츠푸린(迟福林) 원장은 “중국의 발전은 아직도 적지 않은 애로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경제성장에 따른 자원환경의 지불대가가 크고 도농간, 지역간 등 경제사회 발전의 불균형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문제는 오로지 진일보한 개혁개방 추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이번 포럼에서 아시아 각국들이 아시아의 공동 번영과 발전을 위해 ▲정치적 상호신뢰 증진 ▲경제협력 강화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 ▲인적 교류 강화 ▲개방정책 지속 유지 등을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번 포럼의 또 다른 결실은 대만과 중국의 양안간 화해•교류 협력방안 논의였다. 후진타오 주석과 대만 샤오완창(萧万长) 대만 부총통 당선자가 가진 단독면담은 지난 1949년 이후 양국간 최고위급 만남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거리가 됐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양안간 관계는 급진전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후 주석은 이 자리에서 “양안간 경제교류 협력이 역사적인 기회를 맞게 됐다”며 “서로가 공동 노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샤오 당선자는 “양안 경제발전은 양안 국민의 공통된 기대”라며 “민생개선과 지역평화를 위해 양안간 경제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샤오 당선자는 후 주석에게 신속한 양안 직항 실시, 중국인의 대만 관광 개방, 양안 경제무역 정상화, 양안 협상틀 복원 등을 제안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 참석한 SK 최태원 회장은 기업인으로 유일하게 개막식 축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아시아의 공동발전과 성장을 위해 환경보호, 에너지절감,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녹색아시아’ 프로그램을 통한 공동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연설했다.
중국은 이번 포럼을 통해 베이징올림픽, 티베트사태, 양안관계 등 민감한 국제적 사안에 대해 무난히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자평이다.
올해 보아오포럼은 티베트 독립시위로 인해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열려 긴장감이 높았다. 포럼 개최지 하이난다오에는 세계 각국 대표들이 모여들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참석국가도 아시아 뿐만 아니라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유럽 등으로 크게 확대돼 세계속에 우뚝서는 중국의 위상을 더욱 뚜렷이 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연합체’ 설립 전망이 솔솔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중국은 앞으로 보아오포럼을 세계무대로 나아가도록 할 야심이다. 포럼 참석자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에 대한 국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포럼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보아오포럼은 오는 6월 금융주제 컨퍼런스를 영국 런던에서 열기로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포럼 자체를 아시아가 아닌 세계무대에서 개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포럼에서는 기후변화 외에도 부동산, 환경, 에너지, 통신, 금융, 기업투자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관련회의들이 잇따라 열렸다./이건우 연구원
아주경제연구소 ajnews@ajnews.co.kr
< '아주뉴스'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