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받는 IB 신화…리스크 관리 강화가 해법

   
 
미국계 IB 베어스턴스는 지난 3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JP모건체이스에 헐값으로 팔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올 들어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줄지어 파산하거나 헐값에 매각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을 주름잡던 IB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미국 대형 IB의 금융기법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이를 습득하기 위해 주력해 온 국내 금융기관들의 행보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 수익 창출에 집착해 리스크 관리가 어려운 파생상품을 양산했던 대형 IB들의 안이함과 급변하는 금융기법을 따라가지 못한 낙후된 감독 기능이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어 미국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친 금융 규제 완화를 경계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 월街 오만함이 금융위기 불러 = 지난 3월 미국 5대 IB 중 하나인 베어스턴스가 파산 위기를 맞고 JP모건체이스에 헐값으로 넘어간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메릴린치와 리먼브라더스, AIG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쓰러지거나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다른 대형 IB들도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대형 IB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크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중 유동성이 증가하자 대형 IB들은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전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차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파생상품의 구조는 지나치게 복잡해졌고 리스크 관리를 위한 노력도 소홀해졌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 대형 IB들의 오만함과 안이함이 불러온 결과"라며 "특히 파생상품의 경우 설계 구조와 유통 경로가 복잡해지면서 한 곳에 집중됐던 리스크가 불특정 다수에게 분산돼 관리하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IB들은 위험이 여러 투자자에게 분산되면 리스크가 헤지될 수 있다고 착각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전 세계 금융기관을 긴장시키며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변해버린 신용디폴트스왑(CDS) 채권이다.

날마다 새로운 파생상품을 쏟아내면서 급격히 변화해 온 금융시스템을 못 따라간 당국의 낙후된 감독 기능에도 책임이 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는 금융산업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규제를 지나치게 풀어줬다"며 "그러나 충분히 발달한 금융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및 감독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형 IB 중심의 미국식 금융시스템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지면서 이를 모델로 국내 금융산업 선진화를 계획했던 정부와 금융권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특히 미국을 모델로 도입한 자본시장통합법은 내년 시행을 앞두고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IB 전환을 최대 과제로 인식해 온 국내 금융권도 신중론으로 돌아서고 있는 모습이다. 안이한 사태 파악과 정보 부족으로 파산을 앞둔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할 뻔 했던 산업은행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황홀한 청사진으로 부풀려진 산업은행의 민영화 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하며 금융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도 서두르기 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IB는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데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IB가 금융 선진화의 유일한 길은 아니므로 국내 사정에 맞는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규제·감독 강화 '절실' =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식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장보형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융 자본주의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돼 왔다"며 "그러나 그동안 오만하거나 과도한 부분이 없었는지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지나치게 완화됐던 규제를 다시 조이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미국은 여러 개의 금융감독 기구가 있는데도 이번 위기를 예방하지 못했다"며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에 올인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기 연구위원도 "금융 규제를 강화하고 감독 기능도 살려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금융회사 설립 규제 완화, 파생상품 발행 및 거래 규제 완화, 금산분리 규제 완화, 헤지펀드 허용 등 수많은 금융 규제를 미국 등 금융 선진국의 기준대로 풀어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규제를 완화하는 만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종구 의원은 "금융시장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각종 파생상품의 구조를 보면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은 덩치를 키우기 보다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미국발 금융위기는 IB 분야에 대한 금융감독 부족과 리스크 관리 소홀이 야기한 것"이라며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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