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안목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국가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면 시장은 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펀드 분쟁조정에서 극히 이례적으로 판매사인 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을 물어 손실 50%를 투자자에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상품구조가 복잡한 탓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해 금융위가 투자자보호 차원에서 제재에 나선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문제는 금융위가 분쟁조정 직후 증권ㆍ자산운용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펀드 수수료를 내려줄 것을 촉구한 데 있다.
불완전판매가 우연한 금융사고가 아닌 업계 전반에 만연한 것으로 비춰지면서 투자자 집단행동이 전방위적으로 번지는 것도 염려스러운 대목이다.
금융위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펀드 판매보수ㆍ수수료 제도가 합리성이 떨어진다며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혀왔다.
펀드 판매보수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해 투자자가 실질적인 이익을 볼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금융위는 현정부 들어 펀드 수수료 공시와 차등화 방안만 내놨을 뿐 더 이상 펀드수수료 합리화 방안은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내년 2월 시행인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에 펀드 수수료 공시를 의무화했고 전문 펀드판매사 설립을 허용했기 때문에 업계 자율경쟁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수료가 내려갈 것이란 게 이유였다.
이를 두고 처음부터 정부가 나서 가격형성에 간섭할 만한 서민경제 영역이 아니었던 만큼 회사마다 경영 전략과 서비스 수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받게 한 것은 적절했다는 평도 나왔다.
하지만 금융위는 돌연 말바꾸기로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증권ㆍ자산운용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업계가 펀드 수수료 인하에 노력해 달라"고 요구하는 한편 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엄중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금융위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도 문제지만 자본시장 근간인 은행이나 증권사를 마치 펀드손실 원흉처럼 지목하는 것은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분재조정 이후 비슷한 민원보다는 근거없는 분풀이성 항의가 폭주하면서 업계가 마비에 빠졌다. 특정 펀드판매사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가 민원이나 소송에 나서는 것은 잃어버린 소비자 권리를 보호해 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자칫 소송 만능주의로 번질 경우 무분별한 법적 다툼을 양산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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