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隋) 나라로 세우고 천하를 통일한 양견(楊堅ㆍ589~604)의 부인인 독고황후가 남편이 천하를 도모하려 할 때 한 말이다. 그녀의 말에서 유래된 '기호지세(騎虎之勢)'는 중도에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기호지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가 있다. 바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다. 인수합병(M&A)를 통해 강덕수 회장은 그룹 출범 10년 만에 STX를 매출 30조원의 재계 순위 12위(공기업 제외) 기업으로 일궜다.
이런 강 회장이 지난 17일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을 인수할 경우 해외 건설ㆍ플랜트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룹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우건설을 새로운 '호랑이 등'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STX의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대우건설 인수를 근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리한 인수로 자칫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STX는 22일 "대우건설 인수여부를 검토한 바 있으나,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강 회장이 호랑이 등에서 내리는 지혜를 발휘 한 것이다.
그룹 존망과 관련한 판단을 내리는 최고경영자는 무릇 호랑이 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호랑이 등으로 판단될 경우 올라타서는 안 된다.
그렇지 못한 사례는 많다. 가깝게는 '금호그룹 사태'가 그렇고, 멀리는 대우통신이 있다. 금호그룹은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대우통신은 부실우려에도 세진컴퓨터와의 관계를 8년 동안 유지, 무려 1조원에 달하는 외상매출금을 떠안았다. 결국 대우그룹 붕괴의 단초를 제공했다.
M&A 전문가들은 '실수의 여지(margin of error)'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충고한다. 100억원을 투자해서 10억~20억원을 벌수도 있지만, 50억원을 날릴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모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정도로 기업인수에 '올인'하는 건 금기다.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주식으로 치자면 손절매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M&A 귀재'로 알려진 강 회장의 이번 선택이 빛나는 이유다.
아주경제= 김병용 기자 ironman17@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