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
건국의 기점을 1919년으로 잡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주장은 국가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여러 선각자들의 노력과 투쟁이라는 밑거름이 있었기에 탄생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3ㆍ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등으로 상징되는 애국정신을 계승했고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과 노력, 투쟁과 희생에 힘입어 탄생했다. 따라서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48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이유
그런데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들은 1919년을 건국의 기점으로 잡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이유는 국가의 3대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임을 상기할 때, 1919년 생겨난 임시정부는 이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다 결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919년을 포함한 1948년 이전의 역사는 바로 정식으로 대한민국을 출산시키기 위한 산고의 시간이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1919년을 정신적 건국이라 한다면 1948년을 실질적 건국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통탄할 일은 좌파 지식인들이 그동안 임시정부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 별로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을 아예 부정하면서도 건국기점 논란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했단 사실이다. 언제 좌파들이 임시정부를 그토록 인정했기에 이런 논란에 가세해서 1948년의 의미를 격하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건국은 불완전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차선의 선택이었다.
국민들 사이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통해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갈등은 계속될 개연성이 높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미화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일 것이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유롭고 부강한 나라를 이룩했다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이기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불완전하나마 최초의 민주공화국 출범
그러나 현행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은 대한민국은 자발적 국민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단정세력에 의해 수립된 정통성이 결여된 정체(政體)이고, 남한의 정부수립이 민족분단을 초래했다고 서술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9년 임시정부 성립과 1945년 광복, 그리고 1948년 건국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공존해야만 하는 존재다. 구한말과 일제강점시기 선각자들의 노력 속에서 대한민국의 씨앗은 뿌려졌고 비록 자력에 의한 독립은 아니었으나, 독립 이후 민주공화국을 세울 기틀이 마련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해방이후 미국과 UN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고, 이와 함께 확립된 헌법의 기초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점차 확립되어가는 발전적인 역사이다. 우리는 이제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와 근대 국민국가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문명사적 의의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공화주의적 애국은 시대적 소명
이제는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탈피하고 실제적 공동체를 숙성시키기 위한 공화주의에 주목할 시점이다. 공화주의란 자유, 평등, 공공선, 그리고 법치를 그 핵심가치로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가운데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이 두텁게 존재할 때 그 사회는 공화주의에 기초한 진정한 시민사회가 된다.
한국은 유사 이래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 민주화를 이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과잉을 피해 나가며 시민사회를 더 알차게 숙성시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식하고, 그 발전과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킬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공화주의적 애국의 덕성으로 무장해야 하며 그 주체는 일반 대중이 돼야 할 것이다.
*이 칼럼은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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