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용선 기자) 대법원의 판결을 악용하는 불법 업체늘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단계'와 '방문판매'의 구분이 애매해 단속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은 '대형 방문판매 업체의 영업행위가 다단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내린 판결로 인해 이를 '면죄부'로 악용하는 피라미드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하위판매원을 두 명씩 두고 무한대로 조직을 넓혀나가는 '바이너리', 세 명씩 확장해 가는 '유니레벨' 등 전형적인 다단계판매 방식을 쓰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쟁점인 '소비자를 거쳐 판매원으로 가입하는' 다단계판매의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아 '무등록 다단계'라는 족쇄를 피해가고 있다.
대구에 본사를 둔 'A'사는 바이너리 마케팅을 이용해 판매 조직을 구축하고 있다. 하위 판매원을 두명씩 두고 조직을 확장해 나가는 이 방식은 기존 다단계판매업체였던 다이너스티 등 통신 다단계판매업체들과 현재 영업중인 고려한백, 유사나 등이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주스를 주로 판매하는 A사는 총 6단계로 판매원의 직급을 분리하고 판매원의 단계는 무한대로 구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스 한병에 33만원씩 판매하며 직판수당(직접 판매한 제품 금액의 10%), 관리수당(하위 두조직 중 작은 그룹의 매출을 일정률로 지급), 직판관리 수당(직접 추천한 하위 판매원이 받는 관리수당을 일정률로 지급) 등을 지급한다. 또 직급보너스(직급별로 회사 전체 매출의 일정액을 공유), 라인보너스(직접 추천한 하위 판매 그룹의 매출 중 일정액을 공유), 재구매성과 수당(하위 판매 조직이 제품을 재구매시 일정률을 지급) 등 다양한 수당 지급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서울 서초, 역삼, 선릉 등지에 센터를 개설하고 매일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며 판매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 상위 판매원은 "지금 빨리 가입해 조직을 구축해야, 조만간 해외진출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수당을 받을 수 있다"며 "조만간 현 시스템으로 네트웍 업체로 등록,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사실상 다단계판매임을 시인했다.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B사도 하위판매원을 3명씩 두고 확장하는 유니레벨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1세트당 150만원짜리 저주파 가정용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이 회사는 총 5등급의 판매 직급을 구성하고 있다. 직판수당, 직급수당, 그룹 유지 수당 등을 후원수당으로 지급하는 등 사실상 다단계판매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업 설명회에서 한 판매원은 "암웨이 등과 같은 미국 굴지기업에 견주어 모자람이 없는 네트웍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미국, 중국, 동남아 시장 진출을 올해 안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원 및 임직원들은 내부에서 공공연히 다단계판매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업체 모 임원은 "대형 방판업체들의 영업 방식이 법원에서 합법적이라고 판결은 받은 것처럼 우리도 소비자와 판매원이 엄격히 구분돼 있다"며 "방문판매업으로 관할 구청에 신고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는 하나도 없다"며 미등록 다단계 영업임을 적극 부인했다.
이처럼 업체들이 불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서와 사법기관은 별다른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업체 수에 비해 감독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것도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로 다단계판매와 방문판매의 구분이 애매해져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법기관 한 관계자는 "바이너리, 유니레벨 등의 용어는 사실상 다단계판매에서나 나오는 용어여서 이런 말을 쓰는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단속의 대상이 됐다"며 "하지만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아모레, 웅진, 대교 등 대형 방문판매 업체들이 다단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후 이를 기준으로 수사를 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3년 전 같으면 100% 다단계로 단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가입시 소비를 했느니 안 했느니 등을 따져야 하고, 따진다 하더라도 이를 입증할 자료를 찾아내기는 쉬운 것이 아니어서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4월9일 대법원은 '방판법 제2조 5호 나목에 의거, 다단계판매는 상위 판매원으로부터 재화를 구입한 소비자가 판매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LG생활건강, 나드리 등은 하위판매원에 대해 재화구입권유가 없었다"며 대형 방판업체들이 다단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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