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보험은 장기 금융상품이다.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보험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인식하고 있다.
어쩌면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불행이 닥쳤을 때 최소한의 버팀목이 돼 주기를 바라며 10년 이상 묵묵히 보험료를 내는 것이다.
최근 수년새 변액보험 등이 인기를 끌면서 보험이 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본래의 기능이 퇴색된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보험 상품의 운용기간에 비해 보험 설계사들의 근속 연수가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이다.
큰맘 먹고 최소한 30년은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는데 정작 담당 설계사가 1년도 지나지 않아 보험사를 옮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본인이 가입한 상품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도 엄습한다.
실제로 삼성·대한·교보생명 등 국내 3대 생명보험사에서 10년 이상 장기 근소한 설계사의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보험사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이에 대해 보험사와 설계사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보험업계는 수당을 한푼이라도 더 주는 보험사를 찾아 끊임없이 자리 이동을 하는 '철새 설계사'들이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설계사는 보험사들이 과도한 경쟁을 벌이면서 실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설계사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에 대해 얼마 전 법원에서 설계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판결을 내려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동양생명 전직 설계사들이 사측의 부당한 수당 환수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수당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1심에서 패소한 동양생명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 수당환수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원고와 합의를 이뤘다.
법원은 보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설계사를 해고하고 미리 지급한 수당도 근거없이 환수하려 한 것은 잘못이라고 질책했다.
'철새 설계사' 논란이 적어도 설계사들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최근 보험사와 설계사들 간의 수당환수 관련 집단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업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중간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빠듯한 살림에도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내 보험이 '폭탄 돌리기'처럼 여러 설계사의 손을 거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분통 터지는 일이다.
보험업계는 설계사들의 정보를 공유해 보험계약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이직을 밥먹듯 하는 행태를 근절하겠다는 입장이다. 설계사들도 소송을 통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소비자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보험의 의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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