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차현정 기자) “36통 80번지면 이쪽이유?”
7ㆍ28 재ㆍ보궐선거 투표날, 서울 역촌초등학교 남관 1층 1학년 9반 앞. 지팡이를 짚은 임의섭(85, 여)씨가 묻는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서울 은평을 역촌동 제1ㆍ2투표소가 마련된 이곳을 찾은 것이다.
지갑에 꼼꼼히 챙겨온 신분증을 꺼내든 그는 은평 지역구민이 된 지 이제 만 5년째라고 한다.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의 팬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 지역 일꾼하면 1번 아니겠소” 했다.
선거 안내 띠를 두른 김범중(20, 남)씨는 “새벽부터 많은 유권자들이 다녀갔다. 생각보다 꽤 많이 몰려와 당황했다”며 “다만 젊은 대학생 유권자들은 의외로 적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40대 주부는 “신랑 출근시키고 자녀들 학교 보낸 뒤 나오느라 좀 늦었다”고 했다. 야권 단일화 후보로 나선 장상 후보에 한 표 던졌다는 그는 원래 천호선 후보에 매력을 느껴왔다고 귀띔했다.
복도를 따라 교실로 들어서자 9명의 투표관리단과 참관인 4명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 이교영 투표관리관은 “현재까지 950여명의 지역민들이 비교적 질서 있게 다녀갔다”고 말했다.
역촌초교 앞에서 분식점을 경영하는 김영숙(52, 여)씨는 이날 아침 투표소에 떡볶이 배달을 다녀왔단다. 그는 질서정연하게,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투표과정에 감동했다고 전했다.
이날 새벽 투표를 마치고 장사를 시작했다는 그는 “속을 망정 이 지역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국현 뽑아놓고 이미 2년 날렸으니 주변에서 받쳐주는 힘 있는 이재오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뒤편으로 고층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 은혜초등학교로 이동했다. 재개발로 원주민들이 많이 빠졌다는 지하철3ㆍ6호선 연신내역 일대는 유권자들도 자연 줄어들었다.
언덕에 자리한 덕분에 허리가 굽은 노년층 유권자들은 길목서 쉬다 가다를 반복했다.
30년 넘게 이 지역에 살았다는 김기대(68, 남)씨는 이재오 후보를 ‘돌아온 탕아‘에 비유했다. 따뜻한 품으로 안고 길들여서 국회 틀 잡고 잘 리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
그는 “이재오는 동네 도랑 파낼 사람은 아니다. 그에게 뭘 바라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겠냐’고 묻자, 그는 “근소한 표차로 이길 것 같다”고 점치기도 했다.
투표를 위해 휴가일정을 하루 미뤘다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 유흥호(52, 남)씨와 함께 투표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 유영아(28, 여)씨가 그렇다. ‘어떤 후보에 더 매력을 느끼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재오”라고 답했다.
반면 대학생 박홍재(31, 남)씨는 “어차피 이재오가 후보가 될 것 아니냐”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장상에 한 표”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리 이 후보가 ‘나 홀로’ 선거운동을 했다 해도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 후보 측 김해진 언론특보는 “민심을 예측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장 후보 측 김진욱 대변인은 “재보선은 고정표를 어떻게 유인해 내느냐 하는 전략사안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역시 재보선은 바람보다 유권자들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8시 투표 마감 결과 은평을 투표율은 40.5%로 나타났다. 당초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에 두 후보 모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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