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 유력 후보 3인..'여풍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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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0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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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치러지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는 집권 노동자당(PT)의 딜마 호우세피(62), 제1 야당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68), 녹색당(PV)의 마리나 실바(52) 등 모두 9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는 호우세피를 비롯해 유력한 후보 3명 중 2명이 여성으로 강한 여풍이 불고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가 31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

다음은 유력 후보 3인의 프로필.

◇딜마 바나 호우세피 = 1947년 12월 14일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주도(州都)인 벨로 오리존테에서 불가리아계 이민자 후손 가정의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0년 전 이혼한 뒤 외동딸과 함께 지내왔으며, 출가한 딸이 대선 캠페인 도중 첫 손자를 낳았다.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 시절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 군사정권 당국에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77년 브라질 최남부 리우 그란데 도 술 주의 주도인 포르토 알레그레 시 소재 연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상파울주 주 소재 캄피나스 대학(Unicamp)에서 경제통화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포르토 알레그레 시에서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포르토 알레그레 시정부와 리우 그란데 도 술 주정부에서 재무국장과 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2001년 PT에 입당하면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을 만났다.

2003년 1월 룰라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연방정부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이어 2005년 6월에는 우리나라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수석장관에 기용됐다. 이후 5년 가까이 수석장관으로 재직하다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 3월 31일 장관직을 사임했다.

에너지 장관과 수석장관을 거치면서 브라질 정부의 주요 개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등 업무 추진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이 때부터 '강한 여성 정치인'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룰라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재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완치된 뒤 룰라 대통령과 함께 전국의 주요 행사에 참석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렸으며, 지난 2월 PT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대선후보로 추대됐다.

올해 대선 이전까지 선거 출마 경험은 물론 PT에서 당직을 맡은 경험도 없는 딜마 후보의 최대 후원자는 룰라 대통령이다. 80% 안팎의 높은 인기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룰라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10% 미만에 머물던 딜마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꾸준히 끌어올렸으며, 대선을 1~2개월 앞두고는 야권 후보들을 완벽하게 따돌리면서 승리를 예고했다.

여기에 원내 1당인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의 미셸 테메르 하원의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도 딜마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 요인이 됐다.

딜마 후보는 룰라 대통령의 지원 아래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착실히 갖춰왔으며, 브라질 공식 언어인 포르투갈어에는 없는 '프레지덴타'(Presidenta)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꿈을 키웠다.

◇조제 세하 = 1942년 3월 19일 상파울루 시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칠레 여성이며,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브라질 최고 명문 상파울루 주립대학(USP) 공과대학을 다녔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으며, 1972년 칠레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USP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1963년에는 브라질 최대 대학생 조직인 전국학생연합(UNE)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64년 군사당국의 추적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1965년 칠레로 옮겼으며, 1973년 칠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칠레에 머물 당시 유엔 산하 중남미-카리브 경제위원회(Cepal)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군사독재정권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던 1978년 브라질로 귀국해 상파울루 주정부에서 공직을 거친 뒤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1988년 PSDB 창당에 참여했으며,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패배했다. 이어 1990~1994년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뒤 1994년 말 총선에서는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페르난도 엔히케 카르도조 전 대통령(1995~2002년 집권) 정부에서 연방 기획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996년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또다시 패배했다. 1998년 연방 보건장관으로 기용됐으며, 당시 그가 추진한 에이즈 퇴치 정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면서 국내외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02년 말 대선에 출마했으나 결선투표에서 룰라 후보에게 패했으며, 2004년 지방선거에서 상파울루 시장에 당선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2006년 선거에서 상파울루 주지사에 당선됐으며, 두 번째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 3월 말 주지사직을 사임했다.

경제학자이자 주정부와 연방정부에서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고, 정치인으로서도 비교적 화려한 경력을 갖추고 있으나 카리스마와 추진력, 친화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제휴 정당인 민주당(DEM) 소속 안토니오 페드로 데 시케이라 인디오 다 코스타(39) 연방하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듯 했으나 대선 출마 선언이 늦어지면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꼽혔으나 올해 들어서는 지지율 추락을 거듭한 끝에 대선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로 몰렸다.

자신은 결선투표까지 가면 역전승을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는 2002년 대선 때보다 더 큰 표차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나이를 고려할 때 올해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사실상 그의 정치인생이 마감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리나 실바 = 아마존 삼림지역인 브라질 북서부 아크레 주 브레우 벨료 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오스마리나 마리나 실바 데 리마'이며,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16살이 돼서야 글을 깨쳤다. 네 아이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10살 때부터 빈곤가정을 돕는 사회활동에 참여했으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반정부 정치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다. 1984년 아크레 연방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가톨릭계의 권유로 1985년 PT에 가입했다.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해 낙선한 뒤 1988~1990년 아크레 주의 주도(州都)인 리우 브랑코 시의원, 1990~1994년 아크레 주의원을 거쳐 1994년 총선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며, 2002년 총선에서 연방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했다.

룰라 대통령 정부에서 2003년부터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며 '아마존의 여전사'로 불렸으나 정부의 아마존 개발 계획에 반대해 2008년 환경장관직을 사임한 뒤 지난해 PV에 가입했다.

'환경보호와 개발의 조화'를 모토로 내걸고 브라질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여론조사 지지율이 10%대에 머물고 있어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부통령 후보로 유명 화장품 회사 대표로 환경단체에서 활동해온 길례르미 레알(60)을 영입했으나 정치 경력이 없는 것이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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