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가에 또다시 '골육상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 왕자의 난(2000년), 시숙의 난(2003년), 시동생의 난(2006년)에 이어 시숙(정몽구 회장)과 제수(현정은 회장) 사이의 대결이 폭로전 양상을 띠고 있다.
선제공격은 현대그룹이 했다. 현대그룹은 4일자 24개 중앙일간지에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광고에서 특정 기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광고임은 한눈에 알 수 있다. 현대그룹은 이 광고를 통해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뛰어들기보다는 자동차산업에 집중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바로 응수했다. 현대그룹 TV광고 자막에 등장하는 '현대건설의 회생을 위해 정몽헌 회장 4400억원 사재 출연'에 대한 진위논란이 그것.
상황은 이렇다. 2001년 당시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건설을 회생시키기 위해 정몽헌 회장이 출연한 사재는 현대건설 보유주식 8000여만주로 액면가로 치면 4400여억원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정몽헌 회장 보유지분은 2천여만주이고 나머지는 정주영 명예회장(5000여만주)과 계열사(900만여주) 지분이어서, 엄밀히 말하면 4400억원 전체를 정몽헌 회장의 사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현대그룹이 발끈했다. 현대그룹 이날 공식입장발표를 통해 "2000년 당시 정몽헌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모든 재산권 처분 및 행사를 위임받아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사재를 출연했기 때문에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재출연분도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표현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은 이와 관련 2000년 4월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당시 고 정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에게 모든 재산권 행사를 위임한다는 내용의 위임장을 공개했다.
위임장 내용은 '본인 정주영은 정몽헌에게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별지의 목록의 재산(주식, 동산, 부동산 등)을 처분하고 이를 관리하는 일체의 권한을 위임한다'고 돼 있다.
위임장 작성일은 2000년 4월 6일이며, 정주영 명예회장의 친필사인이 들어있다. 위임장은 당시 일신법무법인을 통해 공증까지 마친 상태다.
양쪽이 한치의 양보없는 설전이 이어지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이 곱지 않다. 특히 다른 범현대가 기업들은 언짢은 기색이 역력하다. '현대'라는 이름이 다시 '집안싸움의 대명사'로 나서는 각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범현대가 업체의 고위관계자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사이의 '제살깎기' 경쟁이 다른 범현대가 그룹들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요즘 거래처 관계자들과 만나면 현대건설 인수전을 묻는 경우가 많다"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의 폭로전 양상을 띠고 있는 설전이 수위가 언제까지 높아질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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