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지난달 말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이 공식화한 글로벌 '환율전쟁'의 전운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엔고 저지를 위해 6년여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쏘아올린 신호탄은 전방위로 전선을 확대할 기세다.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시아ㆍ유럽 정상회의(ASEM)에서는 유럽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박에 힘을 실었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때맞춰 일본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저금리자금 공급규모를 5조 엔 늘리는 등 추가 양적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경기부양과 환율방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도 다음달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추가 자산 매입계획을 내놓을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로 달러화의 약세기조가 강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 강세를 띠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 막대한 부양자금을 쏟아내며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자국 통화 약세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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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달러 실효환율(선/1973년=100) 및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출처:FT) |
미국은 글로벌 환율 전쟁터에서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다. 약세 행진하고 있는 달러화에 대해서는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중국이 위안화를 시장 가치에 비해 20% 이상 낮게 평가해 전 세계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미국은 막대한 대중 무역수지 적자 등을 문제 삼으며 추가부양에 나서야 한다면서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모기지(주택담보대출)채권과 미 국채 등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3월까지 시중에 2조 달러를 공급했다. 그 결과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해 3월 87 선에서 1년 만에 80 선으로 고꾸라졌다.
이후 지난 6월 87 선을 회복했던 달러인덱스는 최근 다시 77 선으로 밀렸다.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 방침을 시사한 때와 시기가 맞물린다. 연준은 자산 거품과 달러화 가치 추락 우려 등에도 불구하고 다음달 FOMC 회의에서 자산 매입 재개 방침을 발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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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달러 대비 위안(위)·엔화 가치 추이(출처:FT) |
중국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급격한 위안화 절상'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달러화의 약세가 신흥국 통화의 강세를 촉발했다며 세를 규합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ASEM에서도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개막연설을 통해 "우리는 거시경제정책 조율과 출구전략 시점 및 속도를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며 "주요 통화의 환율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부 압력에 몰려 위안화 절상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원 총리는 이틀 뒤 열린 유럽연합(EU) 지도부와의 정상회담 뒤 "중국과 EU 사이에 장기간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며 "이는 양측의 기본적인 이해관계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유럽 측에 유로화 환율 문제는 달러화 약세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며 신흥국 사이에 일고 있는 달러화 책임론을 대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브라질과 인도, 태국 통화당국이 잇따라 외자유입 통제방침을 밝힌 가운데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물가상승 압박을 감수하고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달러화 약세에 저항하고 있다.
◇日 "일방통행에서 침묵모드로"
지난달 엔ㆍ달러 환율이 15년여래 최저치로 떨어지자 외환시장에 전격 개입했던 일본은 지난 5일 정책금리를 0.1%에서 0~0.1%로 낮추며 4년3개월 만에 사실상의 제로금리를 선언했다. 연간 0.1%의 초저금리 대출규모도 35조 엔으로 5조 엔 늘렸다. 경기도 살리고 환율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다.
하지만 일본 통화당국은 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이 다시 15년래 최저치에 근접한 82 엔대로 추락했지만 뚜렷한 시장개입 신호는 내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가 이번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G7) 각료회의 이후 추가 시장개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엔화를 내다 파는 방식의 일방적인 시장개입 효과가 낮다고 판단하고 달러화 가치가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래야 시장개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일방적인 시장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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