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중국의 인플레이션 없는 초고속 성장과 IT버블, 부동산 경기 호황, 세계 곳곳으로 번진 개발 붐, 금융기관들의 공격투자 등에 따른 전 세계적 경제 호황.
이어지는 버블 붕괴와 세계적 투자은행(IB)들의 파산, 신용경색의 세계적 전이, 과중한 국가부채에 따른 유럽 국가들의 부도위기.
인간의 오만이 바벨탑을 붕괴시켰듯이 금융가의 탐욕이 전 세계 경제를 넘어트렸다. 그동안 자율 시장경제가 최선이라고 부르짖던 금융권은 물론 정부와 학계에서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 논의의 시발점이었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은 각 정부의 충분한 유동성 공급과 금융규제 등을 통해 발등의 불을 진화했다. 위기를 진압하는 과정서 각 국가들은 서로의 경험과 정보를 충분히 교환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서는 제도의 완성판이 나올 전망이며, 여기에 따른 한국의 대응 전략과 향후 전망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또 위기 이후 비대해진 정부의 역할과 규제를 어떻게 시장에 되돌릴 지, '뉴 노멀'과 '정부의 현명한 리더쉽'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글로벌 금융질서의 변화와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주요 현안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금융시장을 전망해 본다.
(아주경제 김유경 고득관 기자) 이번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금융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논의가 마무리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논의가 끝나면 금융 시스템 재편은 마무리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직 글로벌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위기는 앞으로 최소 3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과도한 국가부채를 짊어지게 된 미국·유럽 등 서방 선진국의 국가 부도 위험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역내 금융안정기구 및 장치 마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기 이뤄져야 한다.
또 금융시장이 완전 정상화한 뒤의 시대도 대비해야 한다. 위기재발을 막으며 강화된 규제를 어떻게 완화하느냐는 '뉴 노멀'에 대한 고민이다. 강성 규제 밑에서 금융산업의 발전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 "위기 끝나지 않았다"… 국가채무 부담 논의 절실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 은행들의 부실은 중소형 은행들로 전이됐고, 투자자들은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됐다.
금융기관들은 도산을 피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국가들은 신용경색 전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이 채권을 사들이며 위기를 일단 무마했다.
하지만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발행한 채권의 규모가 엄청난 데다 상환시기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남아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세계 은행들이 상환해야 하는 채권 등 각종 차입 규모는 오는 2012년까지 5조 달러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 은행들의 상환 규모는 2조6000억 달러, 미국 은행권은 1조3000억 달러 규모다.
자칫 이 채무 상환에 브레이크가 걸릴 경우 국가의 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4~6월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봤듯, 미국과 유럽이 망하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는 이제 유물이 됐다.
더구나 최근 들어 경기회복세가 둔화된 미국·유럽·일본 등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더욱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 5일 일본은행은 4년 3개월 만에 제로금리를 부활시키고, 5조엔에 달하는 대규모 자산매입기금을 설립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금융위기 이후 일본이 시장에 퍼부은 유동성은 총 35조엔(약 473조원)에 달한다.
미국도 조만간 국채 매입을 통한 추가 유동성 공급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이 위기 이후 공급한 유동성은 1조7250억 달러(약 1897조원) 규모로 앞으로 1조 달러가 추가로 풀릴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유로지역도 '무제한 유동성 공급 시한'을 내년 말까지로 연장했으며,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의 기록적인 실업률은 이제 막 바닥에 도달했을 뿐"이라며 "앞으로 미국과 유럽은 일본식 디플레이션 함정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논의는 '위기재발 방지'에 그치고 있다. 은행과 국가의 디레버리징(차입축소) 방안 및 거품제거에 대한 제도 조성에는 소홀하다.
현재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서 디레버리징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또 국가부도를 피하기 위한 역내 국가 간 통화스와프나 자금공급에 대한 논의는 서로 이해가 상충한다.
때문에 G20 정상회의가 글로벌 금융제도 개편의 종착점이 아닌,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 금융시장의 새 시작 '뉴 노멀'에 대한 논의도…
빵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장사가 안 돼 망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어느 재력가가 나타나 장사가 안 된다면 빵 가게를 통채로 사주겠다고 제의한다. 하지만 이 가게의 주인이 팔고 싶은 것은 가게가 아니라 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정부의 관계는 빵 가게 이야기와 비슷하다. 어려움에 빠진 금융기관을 정부가 돈을 들여 살려줬다. 하지만 경영권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금융위기가 지나며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과 역할은 커졌다. 하지만 위기 이후에는 정부의 역할을 상당 부분 축소할 필요가 있다. 빵 가게 이야기 처럼 자본가는 빵 가게를 경영할 의지가 없고 키울 욕심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어떻게 위기 재발을 막으며, 달콤한 관치를 다시 민간으로 돌리느냐가 위기 이후의 금융시장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도 "관치를 근절하는 방식은 감독권을 갖고 있는 관료들의 재량권을 줄이는 것이지만, 규제가 줄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나빠진다"며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며 이를 오남용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도 "한국의 경우 세계 15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인데 가장 큰 은행은 70위권에 불과하다"며 "금융 산업을 경제 위상에 맞게 키워야 하며, 그에 따른 감독당국이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금융 위기 이후에 브레이크 얘기만 있고 엑셀 얘기는 다 죽었다"며 "엑셀에 가까운 산업정책이 발전적 관점에서 나왔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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