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전 세계적 경기침체 이후 경제적 측면에서 보호주의 색채가 드러난 데 이어 최근 들어 유럽에서 정치ㆍ사회적으로도 국수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반(反) 이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동유럽 회원국을 대거 받아들인 유럽연합(EU) '빅 뱅'으로 저임금 노동력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경제위기 속에 더 커지고 동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사회가 범죄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추세다.
유럽의 반이민 정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나라는 프랑스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는 올해 여름 집시들이 밀집 거주하는 캠프 시설물을 불법 건축물로 간주, 이를 철거하는 동시에 불법 체류하는 집시들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본국으로 대거 추방했다.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EU 법규에 저촉된다는 EU 집행위원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불법행위에 조처하는 것"이라면서 집시 추방을 지속했다.
공동체 법규를 자국의 실정법에 반영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집시를 추방한다면서 유럽사법재판소(ECJ) 제소를 경고한 EU 집행위의 강경한 태도에 프랑스 정부가 주춤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으나 '휴화산'으로 잠복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프랑스의 집시 추방은 유럽 내 반이민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기폭제가 됐다.
지난 6월 총선거 이후 4개월이 넘어 연립정부가 구성된 네덜란드에서는 반 이슬람ㆍ반이민을 내세운 극우정당 자유당(PVV)이 우파 '연대'에 참여하면서 반이민이 새 내각의 정책 목표가 됐다.
지난 15일 취임한 마르크 뤼터 총리는 취임 당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네덜란드는 앞으로도 늘 망명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지만, 과거처럼 이민자를 계속해서 대규모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뤼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VVD)과 기독민주당(CDA) 만으로 연립내각이 구성됐지만, 의회에서 PVV와 연대해야 과반수를 확보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 내각의 반이민 색채는 유지될 전망이다.
여기에 EU 내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탄탄한 경제를 자랑하는 독일에서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실업률에 이민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정서가 확산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서 독일인 30% 이상이 "독일이 외국인으로 들끓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는데 16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다문화 사회를 구축하려는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메르켈 총리는 기독민주당(CDU) 청년 당원을 상대로 포츠담에서 행한 연설에서 "1960년대 초부터 우리는 외국인 근로자를 불러들였고 지금 그들이 독일 땅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계속 머물지 않고 언제가 떠날 것'으로 여겼지만, 스스로 기만한 것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문화 사회를 구축해 공존하자는 그 접근법은 실패했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계속 이민자를 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이민자를 포용하는 다문화 사회 구축에 실패했다고 규정한 발언이 이날 연설의 '하이라이트'라는 게 분석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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