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편집국 ) 오는 11월1일은 대한제국말 순국열사인 위당(韋堂) 안숙(安潚.1863∼1910)이 경술국치의 분을 참지 못해 자결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안숙은 1910년 48세의 나이에 충북 괴산의 오랑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100주기에 맞춰 그의 유고집 '선비 안숙일지(日誌)'가 김영사에서 출간됐다.
안숙은 유림 선비로 1894년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 정오품인 직강(直講)이 됐다. 강직한 성품과 기개를 가졌던 그는 새 학문과 해외 유학에 관심이 많았던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실학파 문인이자 개화사상가였다.
시문을 통해 강렬한 현실 비판과 주체의식, 애국사상을 설파했고 1905년 을사늑약을 애통해하다 민영환이 자결순국한 소식을 접하고 절명시(絶命詩) 같은 제문을 올리기도 했다.
'선비안숙일지'는 위당의 기(記)와 설(說), 시(詩), 서(序)를 편집한 '위당유고'의 완역본으로, 33편의 정론(正論)과 산문, 218편의 절구와 율시가 실렸다.
인간의 연분, 교우, 청빈한 삶의 희로애락과 부패하고 매국하는 권력지배층을 향한 매서운 질타, 왜적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오호라! 사람의 태어남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는데 / 그 죽음이 진실로 마땅히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면 / 그 죽음은 도리어 사는 것보다 현명한 것이니 / 이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밟고서도 /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던 이유인 것이다"
안숙의 묘비에 새겨진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그의 글은 이처럼 비장하면서도 추상같은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
그는 실용적 개화파로서 부국강병에도 관심이 많아 네 편의 '병제론(兵制論)'을 남겼다. 불랑서(佛郞西.프랑스)와 일이만(日耳曼.독일), 보로사(普盧士.프러시아) 왕국의 신식 군대와 징병제도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불랑서 사리왕 제7(査里王 제7.샤를 7세)은 상비병을 창건할 때 불랑서 궁대(弓隊)를 나누어 32공반니(公班尼.컴퍼니.중대)로 하고 공반니마다 500인을 두었는데 지금 천하가 모두 이 제도를 보존한다."
위당의 손자 안병찬은 들어가는 말에 "'위당유고'는 100년을 기다려 나온 것으로 한 가문만의 책일 수 없다. 현재를 사는 이들이 100년의 역사로서 읽고 의미를 새기는 춘추서가 될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는다"고 썼다.
안태식 엮음. 이충구 옮김. 632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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