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로버트 할리씨와 벤트라메이 카브랄씨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먼 이국에서 우리나라까지 찾아와 가정을 이룬 다문화가족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할리씨는 '하일'이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제변호사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방송인으로 더 큰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TV 광고에 출연해 "한 뚝배기 하실래예"를 외치는 그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한국인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럼 카브랄씨는 어떤가. 그녀는 지난 200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민자다. 필리핀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지만 한국에 오고 나서는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중소기업의 생산직 근로자로 전전하고 있다.
한 달에 60~70만원의 박봉을 받으며 '하지정맥류'라는 질병까지 떠안게 됐지만 꿋꿋하게 가정을 지켜나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해 어엿한 한국인이 됐다.
할리씨와 카브랄씨의 공통점 또 하나. 두 사람 모두 다문화가족 구성원인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정부의 친서민 기조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후반기 핵심 국정 과제로 '공정사회' 실현을 내세웠다.
그 동안 사회적 부를 독식해온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서슬 퍼런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방안, 서민 자활을 위한 금융지원 방안 등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동기야 어찌 됐든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은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다시 할리씨와 카브랄씨의 삶으로 돌아가보자. 할리씨는 TV와 라디오를 넘나 들면서 상당한 수준의 출연료 및 광고 계약금을 받고 있다. 모르긴 해도 이 또한 그의 수입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카브랄씨는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를 받는 차상위계층이다. 기준을 아무리 까다롭게 적용하더라도 그녀는 '서민'임에 분명하다.
카브랄씨는 하지정맥류 때문에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자 자동차 실내 청소를 해주는 작은 점포를 운영하고자 했다. 일도 배우고 본인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녀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생업자금 융자를 신청했지만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서 발급한 소득증빙 서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포스코미소금융재단을 통해 다문화가족 자립 지원자금도 신청해 봤지만 재단 측은 거주지가 멀어 실사를 나갈 수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좌절했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은 가난한 나라 출신의 결혼이민자에게 너무 과한 욕심이었던 것 같다며 울었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문화가족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친서민 기조까지 맞물려 기대 이상의 홍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너도나도 지원은 한다는데 실제 수혜자는 없다. 이상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뒤쳐진 사람들에게 일어설 기회를 주고,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회"가 공정사회라고 정의했다.
카브랄씨가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가 하루 빨리 도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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