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48) 회장 일가가 부외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가 주식과 예금, 부동산 등으로 다양해 규모와 용처 등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사건을 맡은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31일 "캄캄한 방(房)에 흩어진 수많은 바늘을 찾아내는 상황이다. (지금도) 매우 많은 바늘이 숨겨져 있다"고 수사 상황을 에둘러 표현했다.
최근까지도 수사 진행 속도와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해온 서부지검이 이처럼 장기화 개연성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서부지검은 이 회장 측이 고(故) 이임용 선대회장의 미신고 유산 수천억원을 제3자 이름의 은행 계좌와 차명주식으로 관리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룹 골프장 인근에서 임직원 이름으로 부동산을 차명 보유했다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흥국생명과 한국도서보급㈜을 통해 부외자금을 불렸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 관련자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이 되풀이돼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0여 차례에 이르는 잦은 압수수색이 결국 기업의 자백을 유도하려는 압박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서부지검 관계자는 "자백ㆍ진술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물증 중심으로 수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법적 절차를 밟아 압수수색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밤샘수사 등으로 신속하게 비리의 몸통을 쳐내던 예전 수사 패턴과 달리 최근엔 수사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장영자ㆍ이철희 어음사기 사건(1982년), 한보그룹 비리(1997년) 등은 20여일 만에 수사가 끝났지만, SK그룹 최태원 회장 사건(2003년)과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2006년)가 종료될 때까지 2∼3개월이 걸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증 중심주의만으론 수사 장기화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해야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만큼 변화한 환경에 맞춰 효율적인 수사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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