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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 김선일 권총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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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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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을 조련한 김선일(53) 대표팀 남자권총 코치는 선수 시절 온갖 우여곡절을 딛고 세계 정상급 선수를 길러낸 명 지도자로 우뚝 선 `불굴의 사수'다.

대학 화공과를 졸업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다 취미로 시작한 권총 사격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20대 후반의 뒤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6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이후 1987년 베이징 아시아선수권대회,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줄곧 입상권 밖을 맴돌다 사격 입문 10여 년 만인 1991년 국제사격연맹(UIT) 서울월드컵 대회에서 남자공기권총 금메달을 획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2개의 올림픽 쿼터를 따내며 사격연맹이 뽑은 `올해의 최우수 선수'로도 뽑히는 등 승승장구하던 김 코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둔 1992년 봄 합숙훈련 도중 사인이 맞지 않아 표적을 갈아 끼우던 동료를 다치게 한 오발사고의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한동안 사대를 떠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사격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한 지 4년만인 1996년 대구백화점 창단 멤버로 복귀해 불혹의 나이에 각종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최고령 사격 대표로 출전해 중국과 일본에 이어 남자 공기권총 단체전 동메달을 땄던 김 코치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스무살 가량 아래의 후배 이상도(32.창원시청)와 진종오(31.KT)를 이끌고 출전했다.

2003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김 감독은 지도자로 변신해 수제자 진종오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현역 시절 세계 최강 중국과 아시아 2인자 일본에 가려 '변방' 취급을 받았던 한을 풀었다.

 김 코치의 조련을 받은 진종오는 대표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50m 권총에서 '깜짝' 은메달로 스타 탄생을 예고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50m 권총 금메달과 10m 공기소총 은메달을 거머쥐면서 세계 최고 사수로 거듭났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진종오 외에는 한 명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던 아쉬움도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베테랑 이상도와 차세대 주자 이대명(22.한체대)가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하면서 씻어냈다.

한국 권총을 명실상부 세계 최강으로 길러낸 김 코치의 비결은 선수들과 끊임없는 대화다. 한참 아래 연배의 제자들이지만 스스럼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유도한다.

첫인상은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 때문에 다가서기 쉽지 않지만 묵묵히 뒤에서 챙겨주는 속 깊은 성격이다. 제자들도 오랜 현역 생활로 선수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는 김 코치를 두고 "뒷모습만 봐도 선수가 딴 생각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아는 것 같다"며 전적으로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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