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충정로] 아일랜드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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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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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서유럽 끝 아일랜드는 매우 아름다운 섬나라다. 자연이 빚은 멋진 경관과 고성(古城)이 어우러지는 신비한 풍광을 연출한다.

영국의 7백여 년에 걸친 지배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해 온 나라. 독립과 자존을 지켜오다 마침내 1990년대에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의 경제 신화를 일구었던 나라가 바로 아일랜드다. 저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 수출 증대를 구가했다.

낮은 법인세율과 규제 완화로 많은 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했고, 외자가 몰려들었다. 당시 유럽 경제의 성공케이스였다. 오늘날 이 나라가 재정위기로 글로벌 경제의 ‘천덕꾸러기’가 되리라고는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아일랜드는 1999년 유로화를 채택하면서 더욱 순항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유로화가 결국 '독배'(毒杯)가 되고 말았다. 유로화 채택으로 대출금리가 낮아지면서 주택경기가 활황을 이뤘다.

금융기관들은 훨씬 싸진 금리에 해외로부터 자금을 들여왔다. 그리고 그 자금을, 자기 돈 한 푼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의 100%까지 빌려 줬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고(波高)를 결국 넘지 못했다.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집값은 폭락했다. 집을 샀던 사람들은 가계부도를 내고, 은행들도 급속도로 부실해졌다.

주택가격은 최고치 대비 60%나 떨어졌고, 은행들은 돈을 빌려올 데가 없어졌다. 결국 정부가 파산 지경에 이른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투입했고, 이로 인해 정부 재정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9%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일랜드의 재정위기는 PIIGS(아일랜드를 비롯,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 국가군) 국가로 옮겨 붙으면서 위기가 더욱 증폭될 조짐이다.

사실 지난해 봄 그리스에서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 이 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간헐적으로 세계경제에 위기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 이유는 이들 국가 특유의 경제구조에 있다. PIIGS 국가들은 대부분 제조업이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발전이 없다. 사회복지 지출과 방만한 재정운영에 오랜 기간 익숙해져 있어 나라 살림을 살찌울 ‘굴뚝산업’이 없는 것이다. 조상이 물려준 관광유산과 농산물 수확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누려왔을 뿐이다.

‘굴뚝’이 없는 나라가 글로벌경제위기 상황에서 재정위기를 돌파하기는 무척 고통스럽다.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택하면 필연적으로 경제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또 오랜 기간을 복지시스템 속에 살아 왔기 때문에 내핍을 견디기도 어렵다. 공기업 개혁이나 연금제도 개혁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봐도 이 방법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유로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있어서 독립적인 환율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 한 나라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자국화폐의 평가절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보통 이 과정에서 자국산업의 수출경쟁력이 살아난다. 그렇게 되면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지만 이들 국가는 그런 수단마저 없는 상황이다.

올 봄 그리스발(發 )경제위기를 가까스로 막아낸 지 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IMF(국제통화기금), EU(유럽연합)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면 일단 위기는 수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아일랜드는 "위기가 과장됐고, 따라서 구제금융이 필요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아일랜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연이어 구제금융을 수용 가능성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속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독립과 주권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외부에 손을 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7백여 년 나라를 뺐긴 나라 국민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구제금융 수용에 따른 경제주권 상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아일랜드 정부 말대로 내년 중반까지는 외부자금을 조달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실을 가득 안고 있는 아일랜드 은행들을 어떡하랴.

은행들은 추가적인 정부의 자금지원이 없으면 대부분 파산에 이를 지경이다. 결국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실물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의 주권과 독립을 지킬 것인가, 경제를 지킬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아일랜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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