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시비가 아니다. 아니 괜한 시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종사자로서, 또 신생매체의 영화 담당기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올릴 공간과 자격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범의 ‘생트집’. 까닭이 있든 없든 기자의 생트집은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한 노배우의 쓸쓸한 죽음이 2일 오전 언론에 소개됐다. 아이돌 스타의 교제나 결혼 발표 및 가십성 발언이 온라인과 신문 연예면을 하루 멀다 하고 장식하는 요즘 한 노년의 죽음은 그저 죽음 그 자체일 뿐이다.
트위스트 김. 본명 김한섭. 60, 70년대 한국영화에 분명한 족적을 남긴 대배우다. 그와 함께 동시대를 즐기지 못한 기자지만 그의 이름 정도는 2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들어봄직 할 것이다.
먼저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청바지와 트위스트, 그리고 못생긴 얼굴. 국내에 가장 먼저 청바지를 소개한 남자가 바로 트위스트 김이라고 한다. 그의 예명으로도 할 수 있듯 ‘트위스트’ 춤 역시 그를 통해 국내에 번지기 시작됐다. 무명 시절 그가 트위스트 춤을 추는 것을 본 신상옥 감독이 그에게 지금의 예명을 선물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맨발의 청춘’은 그를 한국 영화계에 안착시킨 작품으로 기억된다. 기자 역시 대학시절 시청각 작품을 공부하며 그의 연기를 감상한 기억이 있다. 극중 신성일의 주검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은 지금도 한국영화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198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가 에로티시즘으로 잠식할 때는 “차라리 밤무대로 나가겠다”며 출연을 거부하는 줏대와 배짱도 호기 있기 부린 그다.
하지만 노년의 그는 달랐다. 스스로 자처한 구설로 인해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비난과 눈총을 온 몸에 받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쓸쓸한 뒤안길은 노년의 흐려진 총기를 반추하고 있었다. 비록 사진이지만 여러 동료 선후배들의 마지막 배웅 속에 행복한 나들이를 원했던 가족들의 시름조차 차갑게 아려왔다.
그의 죽음과 함께 얼마 전 책을 통해 읽은 에피소드 한토막이 기억에 스쳤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 암살된 뒤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법무부장관이자 링컨의 오랜‘정적’인 스탠튼이었단 사실.
당시 그는 링컨의 장례식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무와 사람의 크기는 누워봐야 알수 있다고 한다. 숨을 거두고서야 링컨이란 인물의 크기를 알게 됐다”
노년에 그가 보인 기행과 구설이 그의 살아온 세월을 대변한다는 선입견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하다. 적어도 영화란 큰 틀 안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대선배의 마지막 발걸음을 무관심으로 일관한 영화계의 눈길은 기자조차 송구스럽게 만들고 있다.
트위스트 김. 저 하늘 높은 곳에 마련된 무대에서 못 다 이룬 연기의 꿈과 혼, 마음껏 뽐내 주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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