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도망치듯 떠나, 어느새 15일 넘게 이어진 찜질방 피난생활도 이제는 끝이 보이고 있다.
8일 임시거처할 장소가 결정되고 이주 일자가 윤곽을 드러냈지만, 인천 중구의 찜질방에 머물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의 표정에는 찜질방 생활이 곧 끝난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의 임시거처 생활을 우려하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포격이 있던 11월23일 밤 찜질방으로 온 주민 박노윤(76)씨는 지난 16일간의 찜질방 생활을 돌이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박씨는 "하루이틀도 아니고 수백명이 함께 있다보니 공기도 나쁘고 시끄러워 너무 힘들었다"며 "나같은 노인들은 감기도 잘 걸리고 몸이 욱씬거려 더 괴로웠는데, 그나마 살만한 곳으로 옮겨간다니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시거처도 임시거처지만 정부가 연평도를 복구하면 하루 빨리 원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식구들과 모여 앉아 김포 아파트에 들어갈 인원을 짜고 있던 최영화(56.여)씨는 "찜질방에 있든, 임시거처로 가든 피난생활은 마찬가지 아니냐"며 "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라고 밝혔다.
오정숙(53.여)씨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을 찜질방에서 재우고 등교시키는 게 마음이 아팠는데, 임시거처로 옮기면 잠자리는 훨씬 좋아질 것 같다"면서도 "한집에 8~9명씩 들어가는데 다른 식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떠밀리듯 시작된 찜질방 피난생활이었지만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씨는 "불편한 점을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곳에 와서 다른 이웃들과 마주 앉아 오랜시간 속내를 이야기하고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최은숙(65)씨도 "세상에는 고마운 이웃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와서 우리를 도와줬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거들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오는 14일께 김포 양곡지구의 미분양아파트(155가구)에 마련된 임시거처로 옮겨 2개월간 살게 된다.
임시거처는 정해졌지만, 앞으로 연평도 현지 복구와 안보마을 조성, 어업손실 보상, 영구 이주 문제 등 해결할 문제는 많이 남아있다.
연평주민대책위 관계자는 "이제 겨우 첫단추를 끼운 것"이라며 "대책위는 주민들이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시와 적극적으로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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