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발표된 구단 측의 보도자료를 통해 갑작스럽게 공개된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다수 SK 팬이 현수막을 준비해 구단의 일방적인 조치에 항의했다. 이날 문학구장 곳곳에는 현수막이 걸렸고 피켓 등을 든 팬도 다수 보였다. [사진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8월 셋째 주. 한국 프로야구의 가장 큰 이슈라면 단연 SK와이번스를 리그 최강으로 이끌던 김성근 감독의 경질일 것이다. 국대 주요 중앙 일간지의 2면을 장식했고 스포츠 뉴스가 아닌 일반 뉴스를 통해서 비중있게 수차레 방송될 정도였다.
2007년 SK의 감독에 오른 이래 '우승 3회, 준우승 1회'의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경기는 물론 저서와 각종 인터뷰 등으로 많은 야구팬들에게 꿈과 감동을 안겨줬던 김 감독의 꽤 일방적인 초고속 '경질' 소식에 SK팬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2000년대 들어 보기 어려웠던 '그라운드 난입'이 벌어졌던 직접적 원인이다.
지난 2007년 SK에 코치로 부임한 이래 팬들의 환호를 받던 이만수 감독은 역적으로 전락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검색창에 '이만수'라고 치면 뜨는 자동검색어는 '이만수 이중성'과 '이만수 다중이'다. 이번 경질에 대한 팬들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이는 사례다.
팬들은 그가 갑작스레 SK 감독으로 오른 목요일 오후 이래로 보인 일련의 행동이 그가 그렇게 불린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야! 뭐 365일…. 쉬어. 이리 나와"라며 자진해서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훈련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알려져 팬들의 항의가 거세자 "코치도 없이 선수들끼리 하는 것은 아니다 싶어서 한 말이다. 와전됐다"라고 해명했지만 막상 방송에는 정경배 코치가 등장하며 해명 언론인터뷰 자체가 웃음거리로 전락한 사건이 팬들이 말하는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팬들은 신임 이만수 감독이 주된 타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SK와이번스 프런트를 끌어내리려 한다. 이번 경질은 물론 '(수년에 걸쳐 이뤄진) 김성근 감독 흠집내기', '사이트개편 도중 사전예고 없이 이뤄진 용틀임마당(자유게시판) 폐쇄' 등이 팬들이 말하는 주된 이유다. 참고로 사이트 개편 이후 야구단 게시판 폐쇄와 달리 농구단과 게임단(T1)은 게시판이 계속 존치돼 논란을 빚었다. 아주경제는 20일 오전 SK팬클럽 운영진이라는 A모(37·자영업)씨를 만나 자세한 '작전'을 들었다.
▲18일 오후 발표된 구단 측의 보도자료를 통해 갑작스럽게 공개된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다수 SK 팬이 이날 경기 종료 이후 그라운드 내로 들어와 항의의 표시로 SK 유니폼과 깃발, 응원도구 등을 불에 태우는 일이 발생했다. 이날 문학구장 곳곳에는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다수 걸렸고 피켓 등을 든 팬도 많이 보였다. [사진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
◆"'프런트 경질작전'의 시작은 모기업 SK텔레콤의 자극을 통해서"
프로스포츠 구단의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일 사안은 운영자금을 주로 대주는 구단 모기업과 관련된 사항이다. 실제 많은 SK팬들은 이번 사태 이후로 평소 감독은 물론 팬들과도 많은 갈등을 빚던 대다수 프런트의 경질을 꾀하는 모습이다. 인터넷 게시판 상에는 "이번에는 결단코 프런트 수뇌부를 (집으로) 보내버린다"라는 등의 표현도 횡횡하다.
이에 일부 팬들은 'SK그룹사 불매운동'을 통해서 기존 프런트 경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경제가 A씨를 통해서 엿들은 불매운동의 방식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최대 타깃은 SK와이번스의 지분을 100% 보유한 SK텔레콤(SKT)이다.
SK텔레콤은 SK와이번스 보유와 지원으로 금전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SK와이번스 운영이 기업 이미지 형성에 '악영향'을 준다면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기업의 프로스포츠구단 운영에 있어 '금전적 이익'은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막상 '이미지 손해'가 나는 악효과는 피해야만 한다. '돈 투자해 손해볼 일'을 하는 기업체는 없다.
일부 SK 팬들은 이런 모기업과 구단 사이의 관계를 노리는 것이다. 이제껏 '불통'으로 일관한 프런트를 SKT의 이미지에 연결해 그룹을 통해서 낙마시키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SKT는 최근들어 뒤숭숭하다. SKT는 플랫폼 사업의 SK플랫폼(가칭) 분리를 추진해 노조와 충돌을 빚었고, 막상 SK플랫폼의 분리 추진 도중에 지주회사 지분구조에 대한 공정거래법 제약으로 난관을 맞은 상태다. 포화상태인 통신사업을 보완할 돌파구를 찾고자 하이닉스의 인수도 추진 중이다. 팬들은 이런 SKT의 어려운 상황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SKT가 복잡한 상황인 이 때 대다수 기업이 '이미지용'으로 생각하는 스포츠 구단에서 말썽이 생긴다면 해결책은 인적쇄신이다. 우리는 이를 노린다"고 밝혔다.
이어 "2007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2008년부터 프런트의 '김성근 죽이기'가 본격화됐다. 이에 팬들의 규합은 가속화됐다. 변호사, 변리사, PD, 금융인, 공무원, 대학생 등 일을 함께 하려는 사람은 다양하다. 전방위로 하려 한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발표된 구단 측의 보도자료를 통해 갑작스럽게 공개된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다수 SK 팬이 문학구장 구단 안내창구(와이번스센터)에 모여 연간회원권 환불을 요구했다. [사진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
◆"어려운 기업들을 압박한다" SK에너지의 1위 탈환 저지 시도
A씨에 따르면 SK텔레콤의 자회사와 관계사에 대한 압박도 적극 추진된다. A씨가 제시한 자료에는 '해킹 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SK커뮤니케이션즈, 카드시장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하나SK카드, '아이유'로 유명한 로엔엔터테인먼트 등 SK텔레콤 주요 자회사의 이름과 행할 '작전'이 적혀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의 부당한 경질을 알리기 위해 모기업 및 모기업 소유 자회사 등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자료에 눈에 띄는 사항은 SK에너지다. SK에너지는 SK텔레콤의 자회사가 아니다. SK에너지는 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자회사로 SK텔레콤과 동급이다. 다만 SK에너지는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말 기준으로 주유소 개수는 SK에너지가 4466개(이하 주유소협회 집계), GS칼텍스가 3401개로 GS칼텍스가 1000개 이상 적다. 하지만 지난 7월 2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GS칼텍스는 대한민국 보통휘발유 시장에서 점유율 32.7%를 기록, SK에너지(32.2%)를 0.5%포인트 차로 제쳤다. SK와 GS의 점유율 격차가 3월 6.5%포인트에서 5월 1.3%포인트로 좁혀진 뒤 6월 역전된 것이다.
더군다나 SK에너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6월 3일 24만3000원을 기록했다가 8월 19일 종가 기준으로 14만3000원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 대비 62%나 감소했다.
A씨에 따르면 열성 팬들은 프런트 상부의 퇴진이 전혀 없다면 SK에너지의 선두 재탈환을 막기 위해서 노력할 기세다. A씨부터 회사 창업 이후로 10년넘게 써오던 주유소를 바꿨다. A씨는 "전국 점유율 하락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천 점유율에서 수치 하락이 의미있는 숫자라면 뭔가 변화가 있을 것" 이라고 밝혔다.
▲18일 오후 발표된 구단 측의 보도자료를 통해 갑작스럽게 공개된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많은 SK 팬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
◆"기업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기업명 부르며 응원하는 입장에서 팬들의 권리도 찾겠다"
A씨와의 인터뷰 도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장기'다. '장기적으로', '장기간의', '장기계획은'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이 추진하는 일이 결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예측이 담긴 단어다.
A씨는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자생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넥센 히어로즈가 매우 힘겹게 운영되는 상황을 봐도 이는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라며 "그래서 구단에 돈을 대는 모기업 입장도 매우 중요한 것을 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서 "하지만 우리같은 팬들의 입장도 중요하다. 응원구호로 매순간 'SK'를 외친다. 더군다나 같은 가격의 동일한 서비스와 물건이 있다면 되도록 SK의 것을 쓰려고 했다"며 "기업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기업명 부르며 응원하는 입장에서 팬들의 권리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A씨는 김성근 전 SK 감독이 '전'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다시 SK로 돌아오길 바란다. 더불어 A씨 표현대로라면 '자신들 의지대로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 영감님을 끊임없이 모욕하고 망신주려 했던' 기존 프런트의 강제 퇴임을 바라고 있다.
본래 LG트윈스를 응원했다가 지난 2002년 시즌 종료 이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며 SK로 너머와서 이제는 SK의 10년 팬이란 A씨의 바램이 이뤄질 수 있을 지, 인터뷰를 마치며 궁금해지는 마음이 커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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