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신 대기업 NTT가 차세대 통신 구상으로 내세운 '아이온(IOWN)'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아이온은 전기 신호 대신 빛을 활용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비를 줄이겠다는 NTT의 차세대 통신·컴퓨팅 인프라 구상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난을 계기로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 대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NTT가 국제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NTT의 아이온 전략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NTT는 2019년 아이온 구상을 제창했다. 데이터센터와 데이터센터를 잇는 장거리 통신뿐 아니라 서버 내부에서 반도체끼리 데이터를 주고받는 짧은 거리까지 빛으로 연결해 대용량·저지연·저전력 통신을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광전융합' 기술이다. 광전융합은 계산과 제어는 기존 전자회로가 맡고 데이터 이동에는 전기 배선 대신 빛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AI 반도체와 서버 안팎에서 오가는 막대한 데이터를 빛으로 보내 전력 소비와 발열을 줄이는 방식이다. NTT 자회사인 NTT 이노베이티브 디바이스는 서버 내부에 들어가는 광전융합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도미자와 마사히토 NTT 이노베이티브 디바이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닛케이에 광기술 연구에 대해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시장이 커지면서 NTT가 개발 중인 광전융합 소자를 데이터센터에 판매할 기회가 열렸다. NTT는 2025년 미국 브로드컴과 손잡고 브로드컴의 부품을 채택하기로 발표했으며, 2030년대에는 광전융합 분야에서 수천억 엔 규모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NTT의 협력사에 머무는 회사가 아니다. 광전융합 기술의 전개에서는 오히려 NTT보다 앞서가기 시작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브로드컴은 2021년 광전융합 관련 제품 진출을 선언한 뒤 미국 대형 기술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이미 양산 체제에 들어갔다. NTT와 협력하면서도, 정작 NTT가 빠진 미국 주도 표준화 진영에는 핵심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엔비디아도 AI 반도체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앞세워 광부품 공급망 확보에 나섰다. 닛케이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 3월 이후 미국 광부품 기업 코히런트와 루멘텀홀딩스 등에 총 1조 엔 규모를 투입했다.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내부 통신 기술까지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표준 경쟁도 미국 주도로 흐르고 있다. NTT는 2020년 인텔, 소니그룹과 함께 아이온 글로벌 포럼을 세우고 170개가 넘는 기업·단체와 표준 논의를 이어왔다. 그러나 미국 주요 기술기업 6곳은 지난 3월 별도로 광전융합 표준 규격을 만들기 위한 단체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브로드컴과 엔비디아뿐 아니라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반도체·부품을 사들이는 고객 기업도 참여했다. NTT의 이름은 빠졌다.
AI 인프라 시장에서는 소수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이 사실상 표준을 정한다. 어떤 기술을 쓰고 어떤 부품을 채택할지가 이들 기업의 시스템 설계에 따라 결정된다. NTT가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 공급망에 들어가지 못하면 표준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 아이온 글로벌 포럼에는 엔비디아와 브로드컴도 참여하고 있지만, 한 미국 기업 관계자는 닛케이에 "협업은 정보 수집을 위해 폭넓게 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NTT 주도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NTT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도미자와 CTO는 광전융합 관련 상담에 대해 "현시점에서는 아이온 글로벌 포럼이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구개발에서는 앞서 출발했지만, AI 데이터센터 서버에 실제로 들어가는 소자와 부품 개발에서는 NTT가 후발 주자이고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앞서 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NTT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 연합 구축에 나섰다. 이달 중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력 벤처투자자와 함께 5억 달러(약 7563억 원) 규모 펀드를 만들 계획이다.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해 광전융합 생태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SK그룹, 대만 중화전신과도 손잡고 광전융합 분야의 경제권 구축을 추진한다.
동시에 경쟁자인 미국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업도 모색한다. 도미자와 CTO는 "한 회사만으로 광전융합을 실현하기는 어렵다"며 "때로는 오른손으로 악수하고 왼손으로는 서로 때리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마다 아키라 NTT 사장도 엔비디아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협업할 기회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온 구상 제창 7년 만에 NTT는 갈림길에 섰다. 빛을 활용한 통신 기술을 앞세워 차세대 AI 인프라의 표준을 주도할지, 아니면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에 부품과 기술을 공급하는 공급업체로 남을지다. 연구 성과를 실제 사업과 공급망으로 얼마나 빨리 연결하느냐가 NTT의 향후 위상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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