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중국 온라인 게임산업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성다(盛大)네트워크의 천톈차오(陳天橋)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주변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수재’로 통했다.
1990년 천톈차오는 17세의 나이에 중국 3대 명문교로 손꼽히는 푸단(復旦)대학에 입학했다. 19세에는 공산당원이 되었고 졸업 즈음에는 상하이(上海)시에서 유일하게 ‘시 우수학생간부모범’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천 회장은 지난 1993년 우수한 성적으로 동기들보다 1년 먼저 조기졸업한뒤, 당시 상하이의 비즈니스 중심지인 푸시(浦西 황포강 서쪽)에 비해 ‘불모지’나 다름없던 푸둥(浦東)지구의 루자주이(陸家嘴)그룹에 들어갔다.
천톈차오가 처음 맡은 일은 회사 홍보용 동영상을 방영하는 것. 10개월 동안 좁은 방안에 갇혀 비디오 트는 일만 하다보니 자신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할 기회가 없었다. 20세의 혈기왕성한 청년 천텐차오는 답답함을 느꼈다. “명문교 푸단대학의 조기졸업생, 시 우수학생 간부인 내가...” 천 회장은 이때 난생처음 좌절감을 체험했다고 한다.
인재를 푸대접하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다른 길을 찾았을 법도 했지만 천 회장은 묵묵히 회사에 남아 독서와 함께 '자아성숙'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당시 자신의 경험에 근거에 "요즘 젊은 일들은 너무 쉽게 직장을 떠난다. 직장생활에서는 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한 품덕이다"고 충고한다.
1999년 가을 26세의 천톈차오는 아내와 동생 천다녠 등 4사람과 함께 성다인터넷을 설립했다. 90년대 말 막 불이 붙은 인터넷 산업에 힘입어 성다는 불과 수개월 만에 4개 사업부를 둘 정도로 무섭게 성장했다.
그러나 2000년 하반기, 인터넷 시장 거품이 빠지기시 작하며 문을 닫는 온라인 사이트들이 줄을 이었다. 성다의 경우 국영방송인 CCTV와 만화 캐릭터 대회를 열고 아우디 등 글로벌 기업의 온라인 만화 광고를 따내는 등 안정적인 발전을 해왔지만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창업 1년을 돌아보며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따져본 천 회장은 곧장 4개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온라인게임 공급에 사활을 걸었다. 다시 1년 뒤, 한국 온라인게임 개발 업체인 액토즈가 만든 '미르의 전설' 중국 공급자 선정을 계기로 성다는 부활했다.
천톈차오의 원대한 이상을 담고 있는 '성다'는 양질의 서비스와 엄격한 비밀번호 보호시스템 등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중국 온라인게임업계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지난 2004년에는 미국 나스닥에 입성했고 2009년에는 52억4100만위안의 판매 순수익을 기록, 전년비 47%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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