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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한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이 부장판사를 “두고보겠다”고 하는 등 '친미'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의 반사작용은 '빛의 속도'와 같았다.
대부분이 FTA를 시작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한 '뼛속까지 친미'가 아니냐는 논리로 이 부장판사의 글을 비판했다.
사람들의 이런 과민한 반사작용은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 같다. '누가 친미'이고 '한미 FTA가 실로 나라를 말아먹을 무역협정'인가는 논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 ‘친미’라는 말에 이토록 빠르고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는 왜 ‘친미’라는 말에 반사작용을 할까.
한 경제학자는 자신이 프랑스 파리의 거리 가판대에서 프랑스 종합일간지 ‘르몽드’의 호외가 팔리는 것을 비유하며 미국의 제국성을 소개한 바 있다.
본 선거도 아닌 미국 대통령 후보경선 과정의 한 지역선거 결과에 호외까지 내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행위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경선 후보자들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뉴스거리가 되니 말이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표현대로 미국은 제국 중의 제국이니 그 제국의 사령탑이 누가 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호외를 발행하면서까지 추이를 지켜보는 방법으로 미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왜 ‘친미’라는 말에는 이토록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걸까. 해방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미국을 좋아하게 된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또 우리나라 고위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친미'가 '매국(賣國)'의 주범이고 이의 반댓말을 '진보'로 착각하는 것 같다. 아니 '애국(愛國)'일지도 모르겠다.
그 부장판사 뿐만 아니라 이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들 모두, 자신이 '친미'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면 왜 '친미'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싶은지 부터 되짚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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