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경기도 시흥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손 전 대표는 여야를 두루 거치며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넘나드는 정치 스펙트럼을 지닌 인물이다.
모범생이던 그가 ‘투쟁의 길’로 나선 것은 한일 정상회담 반대 투쟁을 벌였던 경기고 3학년 생이던 1964년부터다. 투쟁 현장을 누비고 다녔지만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이듬해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계속 투쟁의 삶을 살았다. 이 때 고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경영),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법학)와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중 재적으로 인해 그는 탄광 등을 돌며 노동현장속에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73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인 박형규 목사와의 인연으로 빈민선교에 뛰어든 그는 이후 한국기독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을 거치며 인권 운동에 나섰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 1988년부터는 인하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93년 경기도 광명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돼 경계에 입문한 뒤 거침 없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민자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의 대변인을 역임하며 15대 총선에서도 당선된 그는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2000년 3선에 성공한 후 2002년에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4년간 무난하게 경기도지사 직을 수행하면서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부상하던 그는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한다. 당내 대선경선에서 ‘손학규 대세론’을 불러일으켰으나 한나라당 출신이란 꼬리표 등 한계를 드러내면서 경선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이듬해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직을 거머쥐었으며 2010년에는 두 번째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4월 초선을 진두지휘한다.
이후 강원도 춘천에 칩거하던 그는 수원 장안의 이찬열 후보를 당선시키는 등 ‘선거의 사나이’로 불리며 2010년 다시 당 대표에 오른 뒤 2011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4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가족으로는 배우자인 이윤영씨와 두 딸.
△경기 시흥(64)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인하대·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지워싱턴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민주당 대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4·15·16·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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