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나름 선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소통의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미 FTA 강행 처리, 4대강 사업 일방 추진, 대통령 친인척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등 국민들이 의문을 품는 사안마다 정부의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어 불신을 자초했다는 이유다.
현 정부 임기 내내 소통이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지만 이를 위해 정부가 노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는 단연 클 수밖에 없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모두를 아우르는 ‘엄마의 리더십’을 발휘해 그동안 쌓였던 벽을 허물고 소통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열망인 것이다.
하지만 소통을 통해 당장 대립의 벽을 허물기에는 그간의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 보인다. 대선 직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가 터지면서 극명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세대 갈등 ‘봉합 시급’
대선 이후 세대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만큼 그 무엇보다 세대 간의 원활한 소통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18대 대통령선거가 50~60대 보수층과 20~30대 젊은 진보층의 표 갈림이 심했던 만큼 이로 인한 후폭풍이 심화되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이를 방증하듯 선거 직후 포털사이트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청원이 일기 시작했다. ‘기초 노령연금 폐지’는 물론 ‘경로석을 폐지해야 한다’는 구호마저 등장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곧바로 5060에서 ‘대학생 교련 교육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 자칫하다간 ‘갈등’이 아닌 ‘전쟁’으로까지 격화될 분위기다.
금재호 노동경제연구원 선인연구원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 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서 국민연금 등을 통해 부모 세대를 책임질 경제력도 상실했다”며 세대 갈등의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이어“갈등봉합을 위해 성장을 통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50~60대 층은 기득권 의식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해법을 내놓았다.
◇소통을 통한 양극화 해소 필요
양극화 된 사회구조 역시 소통을 통한 대승적 협력이 요구된다. 이미 우리 사회는 부자와 서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철저히 분화된 상황에 놓여있는 것.
이를 해소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가 각종 규제 등을 시행, 대기업 때리기에 나섰지만 이러한 정부 정책이 글로벌 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수익성 및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의 침체는 결국 고용시장 악화로 이어져 우리 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트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중소 상인들은 지금의 규제로는 어림도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더욱 더 강력한 규제를 걸어 대기업을 압박해야만 무분별한 팽창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부자증세 또한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대상자에 해당하는 이른바 부자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이 낸다며 반기를 든 상태다.
이렇듯 양측의 의견이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협력을 통한 상생발전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풀어나갈 해법으로 제시된 만큼 이들을 위한 소통의 장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사관계 ‘투쟁’ 보다는 ‘협상’
타협 없는 노사관계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다. 살이 베일 정도로 매서운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수많은 노조원들은 철탑 위에서 농성 중에 있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 가운데 최우선 과제는 이들을 철탑 아래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투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협상함으로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노동계에게 관철할 필요가 있다. 벼랑 끝 협상 뒤에 남은 건 언제나 상처뿐이었다.
독일의 노사 해법인 ‘라이프치히 모델’은 우리 노사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좋은 예다. 라이프치히 모델은 독일 자동차 업체인 BMW사와 노조, 지역사회 간 상생 협약에서 출발한 것으로 유럽 경제위기 속에서도 독일 제조업이 성장하는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2001년 BMW가 공장 국외 이전을 추진하자 BMW 노동자협회는 임금 인상없이 근로시간을 주당 3시간 늘리겠다고 제안하며 이를 막았다. 사측은 이를 수용하고 13억 유로를 투자해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건설, 자국 일자리 창출에 힘을 실었다.
지난 8월 현대차 노조가 12차례 파업 끝에 임금에 변화없이 근로시간을 줄인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 노조가 임금에서 양보를 했을 경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했다는 게 관계자 측 전언이다.
노사정위원회의 대표성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경우 노동자를 대표해 한노총, 민노총이 멤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두 조직의 조합원 수가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만큼 모든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사용자 측 또한 경총, 전경련 등 대기업위주로만 구성돼 있어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 및 고통분담을 이루어 낸 역사가 없다”면서 “전체를 포용하도록 노사의 대표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이념 간 대립 ‘여전히 숙제’
이밖에 캐묵은 지역감정과 진보·보수 이념 논쟁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도 차기정부로 떠넘겨진 숙제다. 이번 대선에서도 전라도-민주당, 경상도-새누리당의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 대통합을 외치며 지역, 이념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외쳤건만, 개선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아울러 박 당선인이 당선되자마자 능력 위주의 탕평책을 외친 이유라고도 볼 수 있다. 보수논객 출신 윤창중을 수석대변인으로 임명, 첫 단추를 꿰면서부터 논란이 일었지만, 차기 내각으로 볼 수 있는 인수위 주요 인사를 균형 있게 시행하며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수위 인사에 대해 민주당 측 또한 “나름대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인사로 평가하며, 박 당선인의 고뇌한 흔적이 엿보인다”며 긍정 평가했다. 박 당선인이 누누이 ‘100% 대한민국’을 강조한 만큼 열린 소통을 통해 대한민국에 만연한 지역, 이념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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