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곳마다 은은한 감동이 머물다. 경상북도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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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2-2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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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소리길·안강면 세심마을·흥덕왕릉

아주경제 강경록 기자=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남짓한 거리입니다. 가깝고도 먼 곳입니다. 경주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입니다. 신라의 찬란했던 천년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의 역사까지 넘쳐납니다. 물론 볼 것이 너무 많기에 떠나기 전, 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이번엔 경주에서 사색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유려한 곡선의 해변길이 일품인 ‘주상절리 파도소리 길’에서 바다의 소리를 들어보거나, 자연과 융화된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세심마을에서‘옥산계곡’을 걷거나, ‘흥덕왕릉'에서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면 경주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따스한 봄이 오기 전, 경주에서 감성에 젖어보는건 어떨까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따라 걷가보면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들을 볼수 있다. 사진은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

경북 경주 파도소리길에서 바라본 전경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처얼썩~처얼썩~’ 파도가 밀려왔다갔다를 반복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들뜬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경주 파도소리길을 걷기 전 이 곳의 명칭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나만의 작은 의식을 행했다. 눈을 뜨니 문무대왕릉이 바다 한가운데에 보인다. 아마도 저기 문무왕은 천여년 동안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 곳 동해 앞바다를 지키고 있었으리라. 문무대왕릉을 뒤로 하고 파도소리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경주의 파도소리길은 월성원전과 인접한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km에 이르는 해변길이다. 길이 험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급할 이유가 없다. 주변의 풍경과 소리에 천천히 집중하며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조성했다. 마치 제주 올레길 같이 이색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곳 파도소리길은 제주도 처럼 용암이 바다와 만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암석을 만들어냈다. 유난히 검은 암석들이 눈에 띄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 길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양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눈에 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을 때 부피가 수축하며 사이사이에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다처럼 틈이 생기는데 이 틈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받게 되면 단면의 모양이 오각형이나 육각형인 기둥 모양의 절리로 발달한 것이 주상절리라고 한다.

주상절리는 파도소리길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부채꼴 주상절리부터 장작을 포게어 놓은 듯 층층이 쌓여있는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상절리와 위로 솓은 주상절리 등 걸으며 찾아보는 재미 또한 가득하다. 부채꼴 주상절리는 지난해 천연기념물 제 53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해상을 경비하기 위해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통제 되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주상절리는 한 송이 꽃이 핀 모양이라 더욱 특별하다. 국내에서도 처음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하다.

넓게 펴진 주상절리 위로 파도가 밀려오고 감이 반복되면 더욱 멋스럽다. 국화과의 한 송이 해국이 바다를 수놓은 것처럼 보여 ‘동해의 꽃’으로 불리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경주의 주상절리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은 2009년까지 군부대의 해안작전경계지역에 위치해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때문이다.
회재 이언적이 귀향해서 살았던 독락당. 자연과 어울어진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옥산면 세심마을을 가로지르는 계천을 따라 가다보면 옥산서원, 독락당, 정혜사지 14층 석탑을 만나볼 수 있다.

◆ 신라 속 조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안강면 세심마을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한 곳은 경주시내에서 차량으로 30분 가량 떨어진 안강면 옥산리 세심마을이다. ‘세심’(洗心)이라는 말은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신라 속 조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내 마음을 씻을 수 있을까. 마을 앞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길이 원만하게 나 있지는 않지만 계곡을 따라 트레킹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어 더더욱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거리도 거리 멀지 않아 1시간 정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마을 뒤 어래산에서 흘러나오는 천을 따라 가다보면 옥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안동 도산·병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등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서원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또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고즈넉하다’라는 느낌이 이런 걸까. 서원 앞, 펼쳐진 풍경에 옛 선비들은 시상(詩想)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으리라.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어 그들의 시선을 따라 생각의 흐름에 잠겨본다.

다시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걸어본다. 계곡을 위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고 계곡 주위의 넓은 돌 바위 위에서 따스한 햇살을 맞다보면 계곡 위 멋스럽게 세워진 한옥 한채가 나온다. 이언적 선생이 귀향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독랑당(獨樂堂)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독락당은 조선 중기의 목조 건물이다. 이언적 선생의 고택 사랑채인 독락당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1514년 과거에 급제한 뒤 승승장구했지만 18년 만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 세심마을로 내려와 지었다고 한다.

독락당은 ‘홀로 즐기다’라는 뜻을 가진 건물이다. 중국 송나라의 사마관이 낙향해 은거하면서 만든 독락원에서 이름을 땄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언적 선생이 벼슬에서 쫓겨난 마음을 나타낸 이름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그에게는 남들과 떨어져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흥덕왕릉 입구에 빽빽이 늘어선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흥무왕릉

◆죽음도 갈라놓지 못했던 러브스토리에 잠기다…흥덕왕릉
흥덕왕릉은 경주 북쪽 안강읍 육통리에 있다. 흥덕왕릉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경주 외곽에 위치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들도 별로 없어 한가롭게 즐길 수 있다.

왕릉입구는 소박하다. 하지만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촘촘히 늘어선 솔밭에 숨이 막힌다. 아무리 감성이 무딘 사람일지라도 이 곳에 들어서면 저절로 감탄스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가슴벅찬 풍경이다. 여기를 찾아온 목적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소나무 아래 솔잎들의 푹신푹신함과 기형적인 나무들의 모습들을 즐기는 것에 흠뻑 빠져들었다. 간혹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더욱 운치를 더한다.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100여미터 들어가다 보면 커다란 왕릉이 눈 앞에 펼쳐진다. 흥덕왕릉이다. 원형이 잘 보존된 신라의 대표적 왕릉으로 꼽힌다.

이 왕릉은 합장릉으로 알려져 있다. 흥덕왕은 그의 부인인 장화부인과 함께 묻혀 있다. 이유는 이러하다. 흥덕왕은 재위에 오른 첫 해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흥덕왕은 11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흥덕왕은 장화부인의 무덤에 합장하기를 유언해 흥덕왕릉에 합장했다고 전해진다. 1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흥덕왕은 장화부인과 함께 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흥덕왕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흥덕왕은 부인이 죽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원앙새 한 쌍을 길렀다. 그런데 어떤 일로 ‘아내’ 원앙새가 죽자 ‘남편’ 원앙새가 슬픔에 잠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흥덕왕은 외롭지 말라고 새장에 거울을 넣어 줬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을 ‘아내’로 알고 부리로 쪼다가 결국 부리가 깨져 ‘남편’ 원앙새도 죽게 되었다고 한다.

왕릉을 뒤로 하고 다시 소나무 숲으로 들어왔다. 흥덕왕은 아마도 그의 부인과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으리라. 아무도 방해하지 말고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죽어서라도 함께 하고 싶었을 그 마음이 내 마음에도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소나무 숲은 은밀한 두 사람의 사이를 가려주고 보호해주는 보호수가 아니었을까.

◆여행메모
△서울에서 경주까지= 만약 서울이나 수도권 경주로 간다면 승용차로 이동하기 보다 KTX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 약 두시간 이십분이면 갈 수 있다. 이후 신경주역에서 렌트카를 이용하자. 경주 시내로 이동하는 것도 30여분 걸리지만 주변 관광지를 둘러볼 계획이라면 차량 없이는 불편한 점이 많다. 또 코레일 회원에게는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1666-7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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