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지난 10일 이브자리 공개채용 2차과정인 산행면접에 응하고 있는 지원자들.> |
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 "5분만 쉬었다 갑시다. 너무 많이 쉬면 저체온증이 와서 안 됩니다. 3조는 도착했습니까?"
지난 10일 새벽 6시 45분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불암사 입구에는 100여명의 청년이 속속 모여 들었다.
이날은 2013년 이브자리 공개채용 2차 시험인 산행 및 건강면접이 있는 날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지원자들은 정장 대신 등산복과 운동화를 착용했다.
긴장한 표정의 지원자들과 달리 임직원들은 등산 준비에 분주했다. 이들은 물과 오이·과일·핫팩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혹시 발생할 사고에 대비해 안전장비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7시. 5인 1조로 구성된 지원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은 지원자를 앞뒤로 에워싸 추락과 낙오를 방지했다. 산행에 미숙한 초보자들은 선배의 손을 잡거나 다른 지원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응시자들은 휴식시간마다 정상에서 선보일 조별 미션과 자기소개, 장기자랑 등을 준비했다.
9시. 드디어 지원자들은 태극기가 펄럭이는 불암산 정상 아래 큰 바위 터에 도착했다. 100여명의 지원자 및 임직원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37기 이브자리 신입사원 면접은 힘찬 함성과 함께 시작됐다.
매년 3월에 실시하는 이브자리 공개채용은 각종 취업 카페에서 이미 독특한 인재선발로 유명하다. 학벌·토익·학점 위주의 '스펙'보다 체력과 인성을 중시하는 건강면접 점수가 합격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20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산행·건강면접은 '건강한 생활문화'를 실천하려면 건강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고춘홍 대표의 뜻에 따라 도입됐다.
응시자들은 등산을 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자기소개와 장기자랑, 조별 미션 등을 준비했다. 주변 등산객들도 신기한 눈초리로 지원자들을 응원했다.
미션 주제는 매년 바뀌지만 주로 적극성·끈기·팀워크 등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으로 구성된다. 올해는 마술·광고 만들기·즉흥으로 물건 팔기 등이 제시됐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불암산 일대 장관을 병풍 삼아 지원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끼도 공개됐다.
16개월 동안 운영한 쇼핑몰을 접고 도전한 지원자, 금연·금주 문화가 맘에 들어 사내 커플에 도전한다는 지원자, 열정 넘치는 최고령 지원자 등 재능과 끼가 가득한 30여명이 전국에서 모였다.
12시. 점심식사도 면접의 일부다. 지정된 식당에서 임원과 선·후배가 자연스럽게 모여 식사를 하는데, 이때 오가는 대화와 태도 등도 중요한 평가 요소이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식사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을 통해 지원자의 품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 산행을 마친 지원자들은 서울 휘경동 본사 근처의 피트니스에서 체성분 측정·턱걸이·오래 매달리기 등 기초 체력을 확인하는 건강면접을 진행한다.
건강면접을 통해 입사한 직원들은 자기소개·질의응답 등으로 진행되는 일반면접보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건강면접이 더 좋았다는 반응이다. 길어야 10분 이내인 일반면접보다 하루종일 진행되는 면접을 통해 자신의 열정과 잠재력, 끈기 등을 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산행·건강면접에서 1위를 차지한 강혁모 주임(30)은 "사투리가 심해 걱정이었는데 장시간 진행되는 건강면접은 적극성과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재헌 인사팀 팀장은 "체력검정을 통해 뽑힌 지원자들은 업무 성과도 좋다"며 "지원자의 준비된 모습밖에 볼 수 없는 사무실 면접과 달리,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품성과 태도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별 차이를 존중하고 테스트에 임하는 자세 등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심사하기 때문에 산행 및 건강면접이라고 해서 무조건 체력 좋은 응시자만을 위한 면접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요즘 재계에서도 평준화된 스펙보다 열정과 끼, 도전정신 등을 위주로 평가하는 공개 채용이 잇따르고 있다.
SK그룹은 학력과 외국어 점수를 배제하고 끼를 갖춘 바이킹형 인재를 뽑겠다고 나섰고,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역시 서류전형을 비롯한 대표 스펙 8가지 항목을 폐지했다. 한화그룹과 한솔그룹도 인·적성검사를 없앴다.
채용 시장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트렌드가 도입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2013년 이브자리 제37기 공개채용에 응시한 지원자들/이브자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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