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응대 전화를 받던 한 직원이 “건물에 폭탄이 설치됐다. 모두 대피하라”고 소리를 치면서 다른 직원들이 허둥지둥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통해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이에 놀란 법원 경찰도 갑자기 출동해 폭탄 설치 정보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정말 폭탄이 설치된 것인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법원 직원들은 건물 밖에서 수백 명이 삼삼오오 모여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가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건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법원 책임자가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니 그 전화 속 인물이 갑자기 “당신네 건물에 폭탄을 설치해 놓았다”며 협박을 하면서 소동이 시작됐다. 이에 놀란 직원은 소리를 지르며 주변 동료들을 대피하라고 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폭탄 설치 협박은 거짓이었고,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일이 됐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 이후 묵직한 가방을 메고 가는 사람만 봐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인물(때론 정신질환자)들이 전화, 이메일, 편지 등으로 공공조직과 사회에 협박을 가한다.
사람은 경험적 인지 동물이어서 큰 충격을 받으면 트라우마라는 후속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지난해 연말 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코네티컷주 초등학교 총격사고로 6세 안팎 아이들 20명을 포함해 총 26명이 20대 초반 범인에게 희생당한 일도 있었다. 그에 앞서 같은 해 여름에는 콜로라도주 극장에서 20대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마른하늘에 날벼락 꼴로 사상당한 사람이 거의 100명에 가까웠다.
총기 사고가 이어지면서 쌓인 사회적 불안감에 보스턴 테러의 충격이 더해지면서 여기저기 불안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마라톤 현장에서 테러가 있을 것으로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것도 42.195킬로미터를 뛰고 벅찬 가슴으로 자랑스럽게 들어오는 결승점 부근이었다.
지금 미국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안 가는 사람도 생기고, 공항이나 버스 정류장 등에 큰 가방이 놓여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몇몇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후속 테러가 있을 것’ 또는 ‘사회가 불안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과거 아군과 적군의 전투는 말 그대로 전장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상대를 전멸시키거나 항복시키면 끝나는 게임이었지만, 지금 벌어지는 테러와 총격 사고는 모두 세포화된 조직이나 개인들이 일으키는 것들이다. 그만큼 전장이 따로 없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사전에 감지해 방지하거나 사후에 제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를 비롯해 전 세계 적군 대응 전략을 짜는 정부부처와 정보부서는 이러한 세포화된 폭력 및 테러 세력에 맞서는 병법을 다시 짜고 있다고 한다. 과거 전투병법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물이 새는 한 두 작은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리듯이 세포화된 적들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자신들을 영웅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40년을 넘게 산 한 한인 이민자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예전 같지 않다. 1970년대만 해도 참 사회가 너그럽고 사람들도 지금보다 더 친절했다. 유학생에게도 소셜시큐리티 사회보장 번호, 운전면허 척척 내주었고, 갖가지 사회복지 혜택을 참 많이 받았다. 이제는 몇 번의 큰 테러와 전쟁을 거치면서 사회가 정말 각박해짐을 느낀다. 해가 지지 않는 미국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미국이 흔들리나 잘 믿기지 않는다.”
소시민의 괜한 걱정, 확대해석이라고 믿고 싶다. 20~21세기 초강대국 미국에 사는 시민들이 이 정도로 불안할 때가 있었나 싶다. 새로운 게임을 맞은 미국과 다른 서방 세계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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