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악어와 악어새의 진정한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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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8-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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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생활경제부장 = 요즘 한국이라는 나라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연일 터져나오는 기업들의 부끄러운 행적이 그렇고,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각종 사건·사고가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내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은 권력을 손에 쥐었던 자(者)들의 치부가 뒤늦게 드러날 때다. 횡령과 배임이라는 명목으로 비(非)권력자들을 몰아세우는 권력자들을 볼 때마다 실제 횡령과 배임을 한 죄인들보다 어쩌면 그들이 더 사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아마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것들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학습이 이뤄지면서 어느 정도 변별력이 생긴 셈이다.

당장 CJ그룹만 봐도 그렇다. 사건의 큰 줄기만 보면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을 오너가 유용하면서 횡령과 배임이 발생했다는 게 주요 골자다. 돈이 방향을 잘못 잡고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다면 돈의 주인인 이재현 회장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사회는 결과를 중시하니까.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수사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양파 껍질처럼 벗겨져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위 말해 일반인들이 우러러보는 권력자들이다. 국세청장을 비롯해 앞으로 신문지상에 이름이 언급될 다른 정치인들도 여럿 대기하고 있다. 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부끄럽다.

시간이 지나면 신문은 이들을 종합해서 '게이트'라고 이름을 붙인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90% 이상 예측할 수 있다. 과거 정권에서 이미 선행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라는 게 허탈했다. 매번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각계각층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은 변화해야 한다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훨씬 전의 위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지만 가시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기는 매우 힘들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요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의 종착역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치다.

최근 한 술자리에서 소위 '재벌 2세'라고 불리는 몇몇 인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시간이 넘는 대화에서 '투자'나 '경영'과 관련된 긍정적인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극도로 위축된, 최악을 생각한다는 비관론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변화를 통한 발전을 꾀하기보다는 '지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현 정부에서 외치는 '청년창업'이나 '일자리 창출'도 헛된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필자의 뇌리에 작용되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우리 사회 어느 곳 하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과 권력의 관계도 지극히 비정상적이라고 스스로 규정해버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기업과 권력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권과 기업 사이의 긴장과 협력관계는 어김없이 반복됐다. 시대별로 정부는 기업을 이용하기도 하고 옥죄기도 하면서 성장과 민심잡기를 위한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악어와 악어새라는 비유가 탄생한 것이다.

엊그제 청와대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새로운 악어들이 등장했다. 이제 이들과 공생할 악어새가 나올 차례다. 사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기대를 하고, 또 실망을 하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진정한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한순간이라도 들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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