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뉴욕 브로드웨이 57번가 길가의 조형물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빨강색의 단순한 영문 조각 'LOVE'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연인들과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가 터진다. 흑인 백인 아시아인등 이 작품앞에선 모두 함박웃음. 사랑으로 통한다.
이 묘한 마법을 부리는 'LOVE' 는 미국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85)의 작품. 인디애나를 단숨에 세계에 알린 이 작품은 그를 기쁘고 슬프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작은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1964년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크리스마스란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날. 인디애나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 'LOVE'를 카드에 그려넣었다. 단정한 서체는 어쩐지 재미가 없어 O자를 살짝 기울였다. 'LOVE'의 O자를 살짝 기울여 변주한 작품은 1960년대 당시 반문화 혁명에서 내세우던 '사랑을 하자, 전쟁이 아닌make love, not war'이라는 구호와 맞아떨어졌다.
'러브'는 등장과 동시에 대중적 사랑을 받고 명성을 안겼지만 인디애나에게 '독'이 됐다. 인디애나는 "러브가 나를 많이 아프게 했다"고 인터뷰때마 밝힐 정도였다.
누구나 사랑하는 이미지탓에 온갖 기념상품에 불법적으로 사용됐고 남발됐다. 미술전문가들은 인디애나를 상업작가로 취급했다. 이런 시선에 환멸을 느낀 작가는 1978년 메인주의 바이날헤븐 섬으로 이주, 현재까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러브는 1998년에야 정식으로 저작권 등록을 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스스로를 '미국 간판장이'라고 부른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채 입양된 작가는 제 2차 대전 이후, 경제력이 풍부해진 미국의 소비문화가 융성하던 시절 유년기를 보냈다. 동네에는 많은 간판들이 있었는데 이 중 언덕 위에 서있던 원색의 화려한 ‘필립스66’ 간판은 전쟁이라는 끔직한 사건을 기념하는 전쟁기념비를 가려주었다. 이후, 작가에게 간판은 호감을 느끼는 대상이자 의미 있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LOVE'가 이제 다시 그를 세상으로 부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그의 첫 미술관 회고전이 열리고 있고 올 겨울 서울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린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는 오는 18일부터 로버트 인디애나의 '사랑 그 이상'전을 선보인다. 빨강, 빨강/금, 파랑/금, 금/빨강 4가지 버전의 '러브LOVE'가 서울에 왔다. 인디애나의 삶이자 열정인 경쾌한 색의 조율을 만나볼 수 있다.
1962년 작업한 '전기 EAT The Electric EAT'도 전시한다. ‘먹다EAT’라는 단어는 인디애나의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또 '1부터 0까지 (열 개의 숫자들)ONE through ZERO (The Ten Numbers)'도 화려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각각의 숫자들은 인디애나 자신과 우리 모두의 삶을 담고 있다. 숫자 1은 출산을 의미하며, 숫자가 커짐에 따라 청소년기부터 성숙해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0으로 끝마침은 삶에서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두고 사라지는 죽음을 나타낸다. 전시는 2014년 1월 12일까지.(02)228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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