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석당박물관, 광개토왕비 탁본 및 실물크기 모형 큰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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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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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석당박물관 1층에 전시되어 있는 광개토왕비를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사진=동아대 석당박물관]


아주경제 이채열 기자 =중국 만주 지린성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를 현지에 가지 않아도 실감할 수 있는 모형이 최근 동아대 석당박물관 1층에 설치돼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6.39m 높이의 실제 크기로 제작된 이 비는 박물관 3층까지 닿을 만큼의 키를 자랑한다. 특히 지역 학생들에게 광개토왕릉비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자료로 인기가 높다. 이 비가 개막된 2주 동안 20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 것으로 박물관은 추정한다.

광개토대왕(374〜412) 사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에 건립한 광개토왕릉비는 그의 업적과 후손의 뜻을 담은 1775자의 문자가 거대한 돌 면에 새겨져 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고대 동아시아의 관계사를 담고 있어 희소성이 높은 사료로 손꼽힌다.

지난달 25일에 개막해 내년 1월 22일까지 진행되는 동아대 개교 70주년 기념 특별전 시리즈 중 하나인 '광개토왕릉비에서 해인사 대종까지-탁본'에서 주요 전시물인 광개토왕릉비 모형물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릉비 탁본 전시를 기념해 세워졌다. 탁본은 박물관 2층 서화실 입구에 전시돼 있다.

이 비는 1880년 발견된 이후 다양한 유형의 탁본으로 전해졌는데, 초기에는 수기로 베껴 적는 묵수곽전본이, 이후에는 묵수곽전본의 도구로 사용됐던 원석탁본이 소량으로 이뤄졌다. 동아대가 소장하고 있는 석회탁본 4면은 굴곡진 비면에 석회를 바른 후 불분명한 문자를 새겨 탁본하는 방법으로 글자의 왜곡이 이뤄진 다른 석회탁본 보다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1905년에 탁본된 일본의 덴리대학 소장본과 가장 유사해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석당박물관의 탁본은 광개토왕릉비의 3면 1행이 탁출되어 있지 않다. 3면 1행의 31자 중 판독 가능한 글자는 2~3자에 불과한데 비 발견 당시 이끼 제거를 위해 능비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가 이뤄져 훼손이 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개토왕릉비의 제1면에는 광개토대왕의 시조이자 고구려의 국조인 추모왕, 유류왕, 대주류왕의 치세와 광개토대왕의 왕위 계승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2면에는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이 연대순으로 기록돼 있으며, 3·4면의 비문에는 광개토대왕의 능묘를 지키는 수묘인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10일 석당박물관 1층에서 이 비를 관람한 이원경(25) 씨는 "광활한 만주에서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압도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실물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관람할 수 있어 뭉클했다"며 "실물 크기로 문화재를 체험하는 경험이 색다르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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