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이 29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원화강세의 파장과 대응방향’ 긴급 좌담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사진=한국경제연구원 제공]
원화가치 상승(환율하락)의 상승으로 수출 증가율 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반도체 호황 착시현상을 배제한 전반적인 경기불황에 대응하지 않으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유사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우리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원·엔 환율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올해 한국경제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원·엔 환율 하락과 수출증가율 둔화 추이 일치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은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권태신)이 29일 오후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에서 개최한 ‘원화강세의 파장과 대응방향’ 긴급좌담회에서 발표를 통해 “2014년 중반 이후 상승하던 원·달러 환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1월 1208.5원을 고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면서 “특히 작년 10월 이후 급락해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050원선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미·일간, 한·미간 신뢰 차이와 한·일간 통화정책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2~2015년 중 미국과 일본은 양적완화(QE) 통화정책을 추진한 반면, 한국은 단순 금리인하 정책에 머물렀다”면서, “현재도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따라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유지해 엔화약세가 지속되는 반면, 한국은 금리인상으로 원·엔 환율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경제는 원·달러 환율 하락보다 원·엔 환율 하락으로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등의 수출 호조를 제외한 우리의 수출 증가율 둔화 추이는 2012년 이후 원·엔 환율 하락 곡선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원·엔 환율 하락이 한국 수출 증가율에 직접 증가율을 크게 둔화시켰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995년에도 현재와 비슷한 원·엔환율 하락과 수출 증가율 둔화 현상이 있었는데, 반도체 착시효과에 대비하지 않아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이를 반복할 경우 유사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조업평균가동률 71%로 떨어져
오 교수는 또한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2021년 이후 제조업평균가동률은 계속 떨어져 71%까지 하락한 점을 지적하면서 대부분의 제조업이 장기불황 상태인 점을 우려했다. 이는 1987년 8월 노동자대투쟁(69.4%), 1998년 7월 IMF 금융위기(63.2%), 2009년 12월 글로벌금융위기(62.5%)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자 하락 기간은 가장 길다.
특히, 그는 2012년 이후 수출 증가 보다는 공산품 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 수입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불황형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해 대처하지 못할 경우 경기 회복시 경상수지가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미국 통상압박의 희생양 전락
오 교수는 원화 강세의 원인으로 △경상수지(불황형) 흑자와 자본유입의 지속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에 따른 정부의 외환정책 추진의 어려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아메리카 퍼스트’ 통상환율 정책에 따른 달러가치 하락 △한·미·일간 통화정책의 차이 등 4가지로 분석했다.
그는 환율하락을 막아내지 못하면 한국은 1980년대처럼 미·일간 경제대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이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한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는 한편, 일본을 비롯한 자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슈퍼 301조를 발동하는 등 통상압박을 가했다. 그러자, 일본은 엔고 전략을 택해 원·엔환율 하락을 부추김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이 희생양이 됐다. 오 교수는 최근 미국은 대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환율과 통상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한국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소규모 개방 경제국의 금융위기는 ‘통화가치 고평가 → 수출 감소 → 가동률 하락 → 금융부실 증가 → 금융위기(은행위기,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만큼, 한국 경제도 자칫 금융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좌담회에서는 한국의 대응방향으로 규제개혁으로 투자를 활성화해 불황형 경상흑자 폭을 축소하는 한편 대미 신뢰회복을 통해 환율 통화정책의 운신폭을 넓히는 방안 등이 논의되었다.
또한 적극적인 외화유동성 확보로 경제위기에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과도한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 등도 제시되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소영 서울대학교 교수, 김정식 연세대학교 교수, 채희율 경기대학교의 채희율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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