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은 왜 일본 종합상사를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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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20-09-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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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핏, 일본 5대 종합상사 저평가·고배당 주목한 듯

  • 달러 하락·고물가 전망에 해외 투자 매력 높아져

  • "세계가 우리를 주목해"...버핏 투자에 들뜬 일본

[사진=버크셔액티브웨어 웹사이트]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대규모 매입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73조원 넘는 현금 방석을 깔고 앉은 버핏이 미국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릴랜드대학 데이비드 카스 재무학 교수는 "버핏이 앞으로 해외에서 잠재적 투자처를 발굴할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라면서 "이것은 시작일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투자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저평가 가치주' 버핏 철학 그대로 반영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버핏이 90세 생일을 맞은 30일(현지시간) 일본 이토추상사, 마루베니상사, 미쓰비시상사, 미쓰이상사, 수미토모상사 지분을 지난 12개월에 걸쳐 각각 5% 이상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베팅 금액은 60억달러가 넘는데 버핏이 일본에 투자한 것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 6월 말 기준 1460억달러(약 173조원) 현금을 쌓아두고도 미국 기업들의 몸값이 너무 올라 좋은 투자처를 찾는 게 마땅치 않다던 버핏이 해외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은 셈이다.

버핏이 일본 기업들에 대규모로 투자한 것은 저평가된 가치주에 장기 투자해 온 버핏의 투자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제프리스의 탄 하 팜 애널리스트는 "이들 회사는 강력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며 배당금을 넉넉히 준다. 또 쉽게 대체되기 어려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종합상사'로 불리는 이들 회사는 에너지 수출입과 자원개발, 유통 등 다양한 부문에 진출해 일본 경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뽐내지만 지난 수년 동안 IT 기술 같은 성장주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에너지·자원 관련 업종으로 간주돼 최근 대세로 떠오른 ESG 투자에서도 외면을 받았다.

그 결과 시가총액은 장부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이토추를 제외한 4개 상사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7~0.8배 수준이다. 그러나 제공하는 배당률은 토픽스지수 평균을 웃돈다. 수미토모의 경우 현 회계연도 시가배당률이 31일 종가 기준 5% 정도다.

아울러 이들 회사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다른 기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을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생업체들이 넘보기 어려운 높은 진입장벽은 버핏이 가장 중시하는 투자 기준 중 하나다.

니혼게이자이는 버크셔가 이들 기업과 협력도 고려 중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들 종합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워낙 방대한 만큼 버크셔가 신흥국 프로젝트에 합작 회사 형태로 공동 출자를 단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버핏, 달러 하락·미국 물가상승 대비하나
버핏의 일본 기업 투자는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하는 상황에 대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버크셔 지분을 3% 보유한 스미드자산운용의 빌 스미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로이터를 통해 "버핏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이들 일본 기업은 유가나 자원 가격이 오를 때 돈을 더 많이 버는 회사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세계 중앙은행들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투입한 뒤 물가상승률이 가팔라질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면서 금, 인플레 연동 채권, 일부 자원 가격은 급등세에 있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미국 물가상승률이 당초 목표로 삼던 2%를 일시적으로 상회하더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며 '고물가 용인' 기조를 선명히 했다. 연준의 제로(0) 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미국 달러 가치는 근 2년래 최저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트홀트그룹의 짐 폴슨 수석 투자전략가는 "미국 달러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은 미국 투자자들에게 한층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가 계속 떨어질 경우 해외 통화는 상대적으로 강세를 띌 것이기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로선 해외 기업에 투자할 때 환차익을 통한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버핏이 우리를?"...들뜬 투자자들, 매수 계속
버핏의 대규모 투자 소식에 일본은 들뜬 분위기다. 버핏의 선택을 받은 5개 회사는 하루 전 일제히 4.2~9.5% 사이에서 급등했다. 1일에도 5개 회사 모두 1~3% 수준에서 추가 상승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버핏의 이번 결정이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투자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라쿠텐증권의 구보타 마사유키 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의 인구 구조 때문에 일본 주식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만큼 견실한 재무 건전성과 꾸준한 수익성으로 무장한 저평가 주식을 제공하는 시장이 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기업에 대한 투자 발표가 마침 버핏의 90세 생일에 나왔다는 건 버크셔가 그만큼 이번 투자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이토추의 오카도 마사히로 최고경영자(CEO)는 "뒤처져 있던 일본 주식, 특히 종합상사 주식에 세계 굴지의 투자자가 관심을 보인 것은 일본 시장 전체에 있어서도 좋은 소식"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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