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된 지 한 달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불법승계 재판이 9일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이날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15번째 공판을 열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이 합병을 하면 지주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삼성그룹 내 '이재용 체제'가 시작됐다. 두 회사의 합병 이후 회사 총수 일가의 지분은 30.4%가 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사(비상장사 20%)는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이 넘고 연매출의 12% 이상이면 사익편취규제 대상이 된다.
공정거래법 제23조2항에서 금지하는 사익편취란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다. 공정위에 따르면 사익편취 규제는 기업 내 정상적인 내부거래는 허용하되, 부당한 내부거래는 엄격한 조건하에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결의가 발표된 건 2015년 5월 26일이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0.35 비율로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같은 해 9월 1일 두 회사는 삼성물산의 사명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목적을 위한 그룹 내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2014년 말 기준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을 50%에 가깝게 갖고 있는 삼성물산을 지배해야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 23.2%를 갖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주가를 끌어올려 가치를 올려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했고, 사명은 삼성물산으로 유지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목적이었다는 말이 다시 나온 건 2016년 12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였다. 이 부회장은 국정조사특위 1차 청문회에 나와 "최서원(전 최순실)씨에게 대가를 받기 위해, 말 등 지원을 한 것이 아니냐"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 9월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의 주가를 띄우는 대신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추기 위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거나 중요 정보를 은폐하는 등 부정거래를 했다고 본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 의혹도 이 부회장의 불법승계 작업 전반에 일어난 일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그룹 내 지배구조를 재편했다.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 중 하나가 2014년 말 기준 삼성바이오로직스였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이다. 이 두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면 제일모직 가치도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이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이 두 회사의 분식회계도 이뤄졌다고 본다. 분식회계는 기업 재무제표에서 자산과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것을 말한다.
2018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연결 종속회사에서 지분법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면서 고의적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불법승계' 재판의 주요 쟁점
15번째 공판인 이날도 주요 쟁점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흡수합병의 불법성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는지 여부 등이었다.
이날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에서 일한 최모씨에 대한 변호인 측 반대 신문이 이뤄졌다. 최씨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준비하던 2014년 미전실 전략1팀 자금파트에서 일했다. 삼성증권에서 제일모직 상장 업무를 맡은 최씨는 미전실 파견 뒤에도 합병 관련 문건을 직접 작성하기도 했다.
검찰은 증인 최씨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2012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다. 검찰은 2012년 12월 작성된 '프로젝트 지'를 언급했다. 이 문건에는 상장 전 삼성에버랜드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문제를 해소하고 총수 일가 위주로 기업 지배구조를 재편하기 위해, 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을 합병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날 검찰은 "증인 최씨는 2014년 11월 미전실 발령 전까지 주요 업무는 그룹 지배구조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작성된 문건(프로젝트 지)은 무엇인지 물었다. 최씨는 "두 회사(제일모직, 삼성물산)가 합병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문건을 검토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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