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카오스에 빠졌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세계 금융시장은 연일 공포에 휩싸였다. 문제는 구원투수가 없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전면에 나섰던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22.24포인트(1.78%) 떨어진 34,312.03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올해 들어 최대폭 하락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94.75포인트(2.12%) 하락한 4,380.26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407.38포인트(2.88%) 급락한 13,716.72에 각각 장을 마쳤다.
이번주 초만 해도 러시아가 철군을 하고 있다는 소식에 뉴욕 증시는 반등세를 보였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두고 연일 공방을 벌이는 등 무력 충돌 가능성이 커지자, 지수는 속절없이 하락했다.
반면, 전쟁 공포가 커지면서 금이나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 선호가 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1.6%(30.50달러) 오른 1,902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2% 아래로 떨어졌다.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CNN비즈니스가 입수한 회계·컨설팅회사 RSM의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돼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안팎으로 치솟으면 향후 1년간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2.8%포인트(p)가량 오를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5%였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물가 상승률이 10%대에 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1981년 10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대를 넘긴 적은 없었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던 연준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은 1990년대 이후 시장이 폭락하고 경제가 추락할 때마다 '연준 풋(Fed put)'에 길들어졌으나,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연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훨씬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금융 시장에 미칠 가장 큰 영향은 원유 가격의 급등인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하는 연준으로써는 돈을 다시 풀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더구나 연준은 작년 가을만 해도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단언했지만, 올해 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0여년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WSJ는 “연준은 과거보다 시장을 도울 도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금리는 이미 제로 수준이고 더 많은 채권을 살 수 있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1998년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처했을 때 연준이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시장을 방어했던 시기와 지금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금리가 높고 인플레이션이 2%를 밑돌았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은 높고 금리가 낮은 반대의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물가가 급등하며 연준 매파 인사들의 발언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매파 인사로 통하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오는 7월 초까지 1%포인트(p)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과도 직결된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
이에 일부 외신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큰 만큼, 미국이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다음주 중 회담을 하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제안을 수락했는데, CNBC는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긴장이 시장에 타격을 입히자 미국이 외교적 해결에 나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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