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으로 이성윤 서울고등검찰청장이 재판에 넘겨진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재판은 초기 의혹 단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고검장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 핵심 쟁점이지만 증인들의 입에선 이 고검장과 관련된 증언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 핵심 증인인 이현철 전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땐 이 고검장이 관여돼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니 '착각'이었던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특히 재판에서는 윤대진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이름만 여러차례 나왔다. 당시 수사 중단과 관련해 윤대진 전 검찰국장의 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다는 것. 이 고검장과는 실제로 연락을 해본적이 없다는 말이다. 재판부도 증인에게 "법무부와 대검 반부패부를 나눠서 얘기해보라"고 말했지만, 사후적인 추정만 있을 뿐 이 고검장 관련된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고검장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의 불법성을 수사한 이현철 전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특히 이 전 지청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막강한 자리이기 때문에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도 답했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것은 인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이날 재판에서 이 전 지청장은 이 고검장이 관련된건 본인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변호인 : 법무부 검찰국장 김학의 출금 관련해서 이규원과 출금 승인한 것이고, 왜 이런걸 문제삼아 비판하냐 이런 상황인데 계속 수사해야한다고한 사실이 있죠?
이현철 전 지청장 : 이 부분은 2차 조서에서 진술한게 맞습니다. 제가 그때 당연히 윤대진 국장과 반부패부장이 서로 연락했을 거라고 제가 착각한거 같습니다. 사실 그게 아니고, 윤대진 국장 내지 법무부 차관이 대검 문무일 총장, 봉욱 대검 차장과 통화해서 승인받았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인 : 반부패부장이 한건 착각이라는 말이네요?
이현철 전 지청장 : 당연히 그렇게 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내용은 대검 차장과 통화해서 승인을 얻어냈다 이런 표현같습니다.
변호인 : 반부패부장 이야기한 건 착각이고, 증인은 이 고검장과 대화나 연락을 한 적이 없죠?
이현철 전 지청장 : 없습니다.
당시 반부패강력부는 안양지청 수사팀에 출입국본부 직원들 수사 경위서와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녹화 자료를 요구했다. 이 전 지청장은 이에 2019년 7월 2일 수사를 그만할 것을 지시했다. 이날 재판에서도 이 전 지청장은 "대검에서 법무부 직원을 조사한 것에 대한 경위서 작성도 요구받았다"며 "경위서는 이례적이었고 경위서를 빙자해 수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검 반부패강력부 소속 김형근 전 수사지휘과장에게서 '당시 상황 알지 않느냐. 이 보고는 안 받은 걸로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도 증언했다. 김 전 과장은 이 전 지청장의 대학 후배였다.
이 전 지청장은 "대검에서 승인하고 지원해줘야 하는 상황인데 경위서를 내고 추가 문구를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에 외압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보고 안 받은 걸로 하겠다'는 김 전 과장의 전화 이후에도 안양지청은 법무부·대검으로부터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았고, 같은 해 7월 '야간에 급박하게 이뤄진 일이라 수사 계획 없음'이라는 문구를 넣은 보고서를 대검에 냈다.
그러나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자 이 전 지청장의 대답도 바뀌었다. 당초 이 고검장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는 달리 법무부가 대검에 요청을 했을 것이라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 전 지청장은 "검찰국장이 야밤에 전화했을 때는 법무부에서 장관이 지시하는 걸로 생각했고, 경위서 제출을 요구할 때는 대검 반부패부에서 요구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증언했지만 이내 "나중에 알고보니 법무부에서 대검에 지시했다고 알게됐고 지금 생각해도 아마 법무부에서 대검에 당연히 요구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법무부와 윤 전 검찰국장에 대한 발언이 이어지자 재판 말미에 재판부도 "대검 반부패부와 법무부를 나눠서 얘기해보라"고 이 전 지청장에게 요구하기도 했지만, 이 전 지청장은 여러차례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수사외압으로 느꼈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 전 지청장이 수사 외압성 발언을 한 주체로 지목한 윤 전 국장과 김 전 과장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중이다. 지난달 30일 재판부는 검찰에 "(이 고검장 공소장에) 청와대, 법무부 관련 공소사실이 있는데, 이 고검장과의 관련성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고 단순한 사실관계만 기재돼 있다"며 "다른 관계자가 공소 제기될 가능성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검찰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공범을 기소하든지, 피고인 측에서 (공범을) 이용했다는 관련성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공소사실만으로는 그런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라고 의문을 표했다.
2017년 대검은 과잉수사 논란을 빚어온 특별수사 전담부서를 대폭 축소했다. 이에 따라 전국 지방검찰청 산하 41개 지청 특수 전담 부서가 사라졌다. 이후 2018년도에는 특수수사 총량이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특수부가 없는 지검이나 지청에서 특수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부패범죄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에 따라 대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원칙적으로 일선 지청에서는 특수수사가 불가능하지만 대검이 승인하면 수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규원 검사와 관련한 서류상 하자 사건의 경우도 추가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침에 따라 반부패부에 보고해야 하지만 관련 보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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