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규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회장은 1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소속된 관계자로서 바라본 드라마는 장애가 있는 주인공보다 그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전폭적으로 응원하는 조연들의 앙상블이 더 눈에 띄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과거 KBS 사장 재직 당시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 앵커를 발탁한 김인규 회장은 우영우 주변 인물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장애인이 가진 한계만 볼 것이 아니라 그의 특징과 강점까지 폭넓게 인정해주는 ‘함께 사는 사회’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장애인 자녀 지원에 집중하는 이유도 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통상 한국에서 정부 차원 장애인 복지는 당사자인 장애인들에게 집중돼왔다. 그 결과 장애인 혈육에게까지 대물림되는 ‘가난의 고리’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늘에 손을 뻗은 건 한국장애인재활협회였다. 협회는 장애인 자녀들에게 학습비를 제공하고, 국내 유명 교육 상담사를 섭외해 무료로 상담을 받게 해주는 등 그들이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장애 가정 아이들은 특정 분야에 재능을 보여도 이를 제대로 꽃피우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다”며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도록 돕는 게 우리 협회 핵심 목표인 만큼 저희는 이를 우리 사회 미래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한 ‘투자’라고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장애인 자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특히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유가 있나.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국가 복지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장애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나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들, 이른바 ‘장애 가족’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다. 장애인 부모들은 대개 학력이 낮고 고연봉이나 고복지 직업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모 사이에서 자란 아이들은 장애는 대물림하지 않더라도 가난의 대물림까지 끊기는 어렵다. 특정 분야에 재능을 보여도 이를 제대로 꽃피우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다. 장애 가정 아이들 ‘출발선’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본인 능력을 발휘하며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게 우리 협회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장애 가정 자녀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지원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두드림(DoDream)’이 대표적이다. 장애 가정 아동과 청소년들이 꿈을 이룰 때까지 도와주는 사업으로 2014년부터 시작했다. 장애 가정 자녀에게 매달 40만~50만원가량 장학금을 대학교 입학 전까지 지급한다. 학습 활동 지원부터 학업 컨설팅과 멘토림 프로그램까지 폭넓게 운영 중이다. ‘글로벌 IT 챌린지 데이(GITC)’도 중점 사업 가운데 하나인데, 장애인들이 IT 기술을 활용해 일자리를 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연간 단위로 정기 대회를 열고 있다. 단순히 장애인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자립할 역량을 키우자는 취지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도움으로 장애 가정 자녀가 진로 설정이나 경제적 자립 등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지난 5년간 두드림을 통해 학원비를 지원받은 한 학생이 올해 경성대 의예과에 진학했다. 이 학생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다. 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서 의예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지체장애인 어머니를 둔 한 청년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장학금을 받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이 청년은 장학금을 바탕으로 국제무역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외국 무역회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는 장애인 복지 정책과 제도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한국 장애인 복지 서비스 종류는 선진국 못지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일단 예산이 부족하다. 올해 보건복지부 장애인 복지 관련 예산은 약 6조원인데, 600조원 넘는 전체 예산 중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절차도 엄격하다. 한국에선 급수를 두고 장애인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국내 장애인 인구가 전체 인구 중 5%가량에 그치는 이유다. 반면 선진국은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등록제와 신고제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책과 제도의 우선순위에서 장애인은 뒤로 밀려있다. 이 우선순위부터 앞당겨야 한다.”
-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 시선은 어디쯤 머물러 있다고 보는지.
“신체나 정신적 조건이 평균에 미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 지배적인 것 같다. 일부 신체적·정신적 한계가 있는 것은 맞지만 장애인이 모든 분야에서 자기 자질과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장애인을 ‘Disability’가 아닌 ‘Challenged’라고 부르자는 논의가 나온 배경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제가 KBS에서 일했던 2011년 뉴스 앵커로 남성 시각장애인을 발탁한 적이 있다. 국내 최초였다. 뉴스를 읽는 테스트를 치렀는데 점자 대본도 잘 읽었고 ‘긴급 뉴스’를 해 보라는 돌발 주문에도 무리 없이 대응했다. 앵커 능력 측면에선 나무랄 데 없는 인재였다. 그러나 제가 KBS 사장 자리를 뜨자 그 앵커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콘텐츠가 나와 주목받았다. 이런 콘텐츠들에서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면.
“자폐 장애인인 우영우보다 더 눈에 띈 건 우영우의 주변 인물들이었다. 우영우의 가족, 회사 동료, 의뢰인 등. 모두 우영우를 믿어주는 사람들이다. 우영우를 채용한 회사와 우영우에게 사건을 맡긴 고객은 우영우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에게 일을 준 것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는 우영우처럼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장애인보다, 장애인을 편견 없이 수용하고 지지하는 사람과 사회가 더 희귀하다. 장애인이 가진 한계만 볼 것이 아니라 그의 특징과 강점까지 폭넓게 인정해주는 ‘함께 사는 사회’가 절실하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후원 중이거나 후원을 계획 중인 분, 그리고 협회에서 지원을 받고 계신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몇 년 전 국무총리실에서 개최한 장애인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장애 가정 자녀 지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총리에게 ‘장애인도 중요하지만 장애 가정 자녀도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가 여기까지 손 쓸 상황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는 ‘과도기’라고 본다. 과도기에서 발견되는 공백은 저희 같은 민간 기관이 잠시 메울 순 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저희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기관이 장애 가정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또 저희는 장애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을 ‘지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투자’라고 한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든 협회 문을 두드려 주셨으면 좋겠다.”
◇김인규 회장 약력
▷서울대 정치학 학사·석사 ▷성균관대 언론학 박사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좌교수 ▷KBS 보도국장·뉴미디어본부장 ▷KBS 사장 ▷경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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