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초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글로벌 경제 주체들이 중국을 쳐다보았다. 세계의 공장이면서 시장인 중국 경제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엔데믹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보다는 미국 경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동안 중국에 넘겨주었던 글로벌 경제 주도권이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의도된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위상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모습이다. 기축통화인 달러 패권의 위력을 가동하면서 금융 파워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한 미국의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할수록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코로나 시기에 세기 각국이 천문학적으로 퍼부었던 팬데믹 머니, 즉 유동성 파티의 종료와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 대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에너지 가격 패닉에 더해 미국 연준의 연이은 금리 인상 빅스텝까지 생겨나면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판국이다.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좋아질 것 같은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내년 말까지 글로벌 경제의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줄을 잇는다. 회복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에 발목이 잡히면서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재의 국면이다. 부정적 신호만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긍정적 신호가 하나라도 나오기만 하면 연쇄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도 있는 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실낱 같은 희망이 나왔다. 10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예상과 달리 ‘세븐 사인(7%대로 완화)’이 나오면서 경기 연착륙에 대한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중간선거 결과는 예측을 비켜나갔다. ‘레드 웨이브’, 즉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판세와 달리 민주당이 선전하면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인플레 진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올랐다. 하원은 공화당이 탈환하겠지만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절묘한 균형으로 바이든 정부 정책에도 미세한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금리 인상에 속도 조절이 나타날 것이라는 낙관론이 확산하면서 주요국 통화가 급등하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시기상조긴 하지만 불씨가 지펴지고 있다.
또 하나 변수는 쌍두마차인 중국 경제의 향방이다. 시진핑 3기 체제가 공식 출범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고 있다. 리더십의 불투명성이 사라지면서 회복 탄력성이 붙을 것이라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대두된다. 우선 ‘제로 코로나’를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정치적 이유가 걷히면서 단계적으로 풀릴 것이라는 조짐이 보인다. 문제는 아직도 확진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국 당국의 타이밍 결정을 주저하게 한다. 생산자물가가 22개월 만에 하락하고 있고, 소비자의 지갑과 공장이 닫히고 있어 뭔가 돌파구가 나와야 하는 시점임은 분명하다. 봉쇄 완화만이 중국 경제의 추락을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머지않아 전환의 물꼬가 터질 예감이 든다.
경제회복 3박자 갖춰져야
비관적 경제 전망에 압도되어 경제 주체들은 행보를 늦추고, 숨을 죽이면서 활동을 자제한다. 전반적으로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상당히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폭삭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지는 오래전이다. 회복에 대한 말을 섣불리 꺼내기가 힘들 정도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언급하고 있듯이 미래는 진보나 효율이 아닌 적응과 회복력(Resilience)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중심의 축이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직시하면서 한국 경제가 순풍을 탈 것인지, 아니면 역풍을 타고 가라앉을 것인지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가고 있다.
회복 징조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꿈틀거린다.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3가지 측면의 시나리오 플래닝이 시급하다. 우선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본격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다행히 환율이 한 주 만에 급격히 하락, 8월 이후 처음으로 1310원 대로 돌아왔다. 고환율이 고물가를 부채질했다고 보면 여기서 더 이상의 상승을 막아야 한다. 다행히 국제 유가도 80달러대에서 큰 진폭이 없는 상태다. 금리도 미국과의 격차 축소가 중요하지만, 경기 하락을 멈출 수 있는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가가 잡혀야 다른 것들이 풀리므로 금리만이 아닌 다른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기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회복의 상징인 수출과 내수가 살아나야 한다. 수출 역성장에서 기인하고 있는 무역적자의 꼬리를 당장 잘라내야 한다. 반도체, 자동차, 가전, 석유화학, 조선 등 수출 주력 품목의 마이너스 행진을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 유럽 등 수출 호조지역에 대한 공세 강화와 더불어 중동이나 동남아 등 수출을 더 늘릴 수 있는 지역으로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서둘러야 한다. 내국인 소비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외국인 관광의 빗장을 열고, 관광 인프라를 하루라도 빨리 재정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복력 지속을 위한 혁신의 가속화다. 대기업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고, 부동산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벤처나 스타트업의 육성을 위한 창업 생태계를 민간 주도로 복원시키는 조치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3박자가 맞으면 한국에게 기회는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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