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당장 고객에게 내줘야 할 돈이 많아지면서 하반기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와 단기차입 한도를 확대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8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이후 보험사 RP매도액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월평균 6조8000억원을 기록했으나, 9월 9조4000억원, 10월 10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11월 수치는 취합 전이지만, 12조7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월평균 RP매도액이 5조6000억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RP는 금융사가 일정 기간 후 금리를 더해 다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파는 채권으로, 대표적 단기자금 조달 방식으로 꼽힌다. 보험사들은 그간 운용자산 중 국공채, 특수채 등 즉시 거래 가능한 장기물 자산 비중이 높아 필요 시 해당 자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최근 가파른 금리상승과 신용경색 탓에 장기 채권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금융당국도 시장 안정을 위한 장기 채권매도 자제를 요청하면서, RP매도가 자금조달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단기차입 한도 확대도 추진 중이다. 단기차입의 경우 해당 한도를 늘린다고 해서 당장 돈을 빌린다는 뜻은 아니지만, 통상 만기 1년 내로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미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생명은 최근 단기차입 한도를 2000억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푸본현대생명은 한도를 5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신한라이프는 1300억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롯데손해보험은 15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유동성 리스크에 대비한 보험권의 관련 움직임들이 역풍으로 작용할까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단기차입 한도의 경우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한도를 확대하는데, 추후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경우 또 다른 유동성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물량이 많은 회사의 경우,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차환 불발 시 추가적인 유동성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한도를 늘린 것이 부실을 키우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RP매도 확대도 사실상 '돌려막기'에 불과하고, 외부 요인에 따라 차입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원하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단기조달 방식이다보니 만기가 도래하는 주기가 짧아 본질적인 유동성 자체가 나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 단기금융시장을 중심으로도 전반적인 유동성 경색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RP매도를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의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저하 가능성으로 인해 보험사의 일반 당좌대출 한도가 축소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차입 수단 확대에 따른 차입여건 개선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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