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이러다 옆통수 바닥에 쓸리겠는데···?"
울퉁불퉁한 암석이 암초처럼 박혀있는 산 중턱 자갈밭을 거침없이 지나자 거대한 흙더미 무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이 길을 지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이 3500㎏이 넘는 차가 순식간에 기울더니 흙무덤 중앙을 가로질렀다. 안전벨트를 착용했음에도 몸이 기울었다. 차량이 경사면 절정에 도달하자 뒷좌석에 탄 기자의 옆통수가 지면과 닿을 듯 가까워졌다. 땅이 귓속말로 '이래도 안넘어 갈래?'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대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러다 차 뒤집히는거 아냐?' 몇 초의 순간이 엉겁처럼 느껴졌던 그 때, G580 투명 콕핏에 차의 기울기가 32도에 도달했다는 알림판이 떴다. 두려움도 잠시, 차량은 롤러코스터를 타 듯 아찔한 각도에서도 안정적으로 흙무덤을 통과했다. "G가 있는 곳에 길이있다"는 'G-클래스'의 미션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차야? 전차야?...산도 계곡길도 거침없이 통과하는 오프로드 끝판왕
지난 12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출시한 G-클래스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 '디 올 뉴 메르세데스-벤츠 G580 위드 EQ 테크놀로지(The all-new Mercedes-Benz G 580 with EQ Technology·이하 G 580)'를 타고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 마련된 오프로드 코스를 직접 주행했다. 벤츠의 라인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G 클래스는 '오프로더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지난해 국내에서만 2000대 이상 판매됐다. 이날 탑승한 차량은 70대 한정 출시된 '에디션 원'으로, G580 일반 모델은 2025년 상반기 공식 출시될 예정이다.
차량의 가장 큰 특징은 바퀴 4개에 모두 개별 제어 전기 모터가 달려있다는 점이다. 바퀴 1개당 각 146.75 hp의 출력으로 최대 587 hp의 힘을 발휘하는데, 이는 실제 오프로드 환경에서 놀라울 주행 성능으로 이어졌다.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40도 이상의 높은 경사면을 3.5톤 이상의 전기차가 오를 수 있을까. 의심도 잠시, G580의 필살기인 오프로드 주행 모드(자갈길)를 켜자 엑셀 패달을 밟지 않고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중간에 브레이크를 밟아도 뒤로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저수지 범람으로 물이 85cm 이상 차오른 도로 상황 앞에서는 어떨까. G580은 망설임 없이 도강하면서도 안정적인 승차감을 보였다. 이후 진흙밭 코스가 나타났다. 흙과 물이 뒤엉켜 끈적끈적한 노면 탓에 바퀴가 지면에 안정적으로 접지되지 않았지만 G580의 주행감은 마치 온로드처럼 부드러웠다. 과연 '진입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운전자의 마음을 이해하듯 360도 전방 카메라가 산 속 굽이진 계곡길을 구석구석 비춰 시각적 피로도를 덜어준다. 장애물을 통과하는 순간마다 입이 턱 벌어졌다.
벤츠 관계자는 "G580은 적정 노면에서 최대 100%의 등판 능력을 구현하며, 최대 45도까지의 측면 경사로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면서 "기존 내연기관 모델보다 15㎝ 더 깊이 도하 주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프로드 성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조용하고, 친환경적이라는 게 전기차의 강점"이라면서 "아웃도어를 즐기면서도 소음, 공해 등으로부터 최대한 자연을 보호하고자하는 오너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G-로어를 통해 기존 G-클래스 특유의 주행 소리를 음향 효과로 적용하는 등 특별한 경험까지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벤츠는 잊어달라...가혹한 환경서 배터리 실험, 안전성 강화
오프로드 전기차는 위험하지 않을까. G580에는 벤츠와 CATL이 공동 개발한 118 kWh 용량의 고전압 리튬 이온 배터리가 탑재됐다. 배터리는 차량 하부의 사다리형 프레임에 결합돼 차량의 무게 중심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를 장착한 하부 프레임은 험준한 오프로드 주행 중 받을 수 있는 지면 충격에 대비해 배터리에 물리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탄소 복합 소재로 만들어졌다. 충전 시간은 10% 미만에서 80%까지 도달하는데 약 32분이다. 1회 충전 복합주행거리는 국내 인증 기준 최대 392㎞다.
플로리안 호프백(Florian Hofbeck) G-클래스 고전압 배터리 개발 및 충전 시스템 총괄 매니저는 "에너지 흐름, 냉각도, 방수, 발열 등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CATL과 매우 혹독한 환경에서 다양한 테스트 절차를 거쳤다"면서 "타협하지 않는 오프로드 성능을 갖춘 첫 번째 전기차라는 우리의 목표를 일부 분야에서는 초과 달성한 매우 이상적인 차량"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G580은 4개의 개별 모터가 장착돼 휠 하나하나가 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추진력과 접지력이 뛰어나다"면서 "그만큼 험준한 지형에 더 적합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또 "모터가 4개 들어가면 차체 무게가 늘어나 주행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모터)크기를 그만큼 줄였기 때문에 대형 모터 2개가 들어가는 것보다 오히려 기동력 측면에서 더 좋다"며 "국내에서 4개 전기 모터를 각각 통제할 수 있는 차는 G580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인천 아파트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 때 큰 피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열폭주 현상을 막기 위한 안전 테스트도 거쳤다. 호프백 매니저는 "셀, 모듈 단위 방수 처리를 강화했고, 배터리팩 가열 실험을 통해 다양한 열폭주 테스트도 했는데 모두 벤츠의 까다로운 안전성 기준을 충족했다"면서 "화재, 침수, 충격, 진동 등 모든 상황에서 안전성 테스트를 끝냈고, 배터리를 보호하는 지능형 탄소복합 소재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최대 10톤 이상의 물리적 충격과 파손에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G580에는 오프로드 주행 시 회전 반경을 크게 줄여주는 'G-스티어링' 기능과 좁거나 막다른 오프로드 길에서 불가피하게 유턴이 필요한 경우 차량을 제자리에서 회전시키는 'G-턴' 기능도 탑재했다. 이밖에 운전자가 지형 대처에 집중하는 동안 최적의 추진력을 유지해 주는 3단 '지능형 오프로드 크롤 기능' 등도 전기차에서 처음 도입된 혁신적인 주행 성능이다.
디자인적으로는 G클래스의 상징인 각진 실루엣을 살리면서도 기존 내연기관 모델보다 오프로드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약간 변형됐다. 강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블랙 패널 라디에이트 그릴이 전기차의 감성을 완성하며, 새롭게 디자인된 A필러, 바람의 저항을 견디기 위한 바람구멍, 살짝 높아진 보닛 높이, 지붕의 스포일러 립 등이 차체의 내외부 성능을 끌어올렸다. 차량 후면에는 디자인 박스가 탑재되며 천정에는 슬라이딩 선루프도 적용된다. 스펙은 차량 길이 4865mm, 너비 1985mm, 높이 1990mm이며, 제로백(시속 100㎞ 도달시간)은 4.7초다. 국내에는 70대 한정 판매되며 가격은 2억39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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