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먼저 그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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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전 국회의원
입력 2025-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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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전 국회의원
[이용우 전 국회의원]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무원을 바라보는 불신과 구조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탄핵 국면에서 고위공무원들이 보여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발전 동력을 발굴하지 못하고 다시 정체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결과가 부정적일까 두려워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능성이 좀 낮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시행착오를 통해 또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1980년대 초반 10만대도 되지 않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최소한 연간 30만대 이상 생산하여야만 사업성이 있는 국산 자동차를 개발한 것, 반도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반도체산업에 뛰어든 것, 스크린 쿼터가 없으면 외국의 대형 영화에 영세한 국내 산업이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폐지함으로써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국내 영화가 나오게 한 것 등 우리나라의 성공은 어려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우리 관료들은 이런 산업의 도전에 불확실성을 알면서도 지원정책을 구사하였다. 만일 결과가 두려워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그러면 왜 영혼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일까?
1) IMF 위기와 극복 과정에서 관료의 잘못된 정책 결정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것과 2) 주기적 정권교체와 이에 따른 정반대의 정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우선 정책 결정의 책임을 묻는 구조부터 보자.
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며 정책당국자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긴축 정책을 설계·집행했으며, 기업인은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으로 협조하였다. 이런 정책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고 주로 위기를 가져온 정책 결정과 기업 경영 결정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때 적용된 것이 1) 정책당국자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죄를 묻는 것과 2) 기업 경영에서 이사의 배임죄를 묻는 것이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을 초과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때 처벌받는 것인 반면 직무유기는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태만한 경우이다. 공무원들은 권한을 남용하거나, 반대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소극적 행정'이 계속된다. 이러한 책임 구조는 공무원의 결정을 위축시키며, 위험 회피를 우선시하게 만든다. 그 결과 공무원들은 적극적인 결정보다는 최소한의 안전한 선택에 머물게 되고, 이는 정책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요컨대 결정할 일이 생기면 그 책임 때문에 본인이 업무를 맡고 있는 기간 동안 결정을 후임자에게 미루는 것이 일상화된 것이다.

기업 경영인에게 배임죄를 묻는 것도 유사한 결과를 가져왔다. IMF 이후의 구조조정, 특히 대기업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회사를 매각 또는 청산하거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계열사를 동원한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그 의사 결정이 해당 회사의 이사들이 회사에 손실을 입히거나 이 회사에 금융 지원을 했다가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배임죄로 다루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책임을 사후적으로 결과를 본 후에 묻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정책에 대해 책임을 따지는 것은 두 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1) 감사원의 감사와 2) 검찰 기소에 따른 법원의 판단이다.

IMF 위기 이후 감사원의 권한은 강화되었다. 감사원의 감사는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적법성 등을 감사하여야 하지만 정책 결정의 판단 자체도 감사하여 책임을 묻기 시작하였다. 사후적으로 어떤 정책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책임을 따진 것이다. 국민연금이 위탁을 맡긴 벤처투자펀드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예로 들어 보자. 이 펀드는 시장평가(BM·Bench Mark)를 초과 달성하고 비교 대상 펀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던 것인데, 이 펀드에 편입된 종목 중 몇 개가 큰 손실을 본 펀드다. 감사원은 이 종목에 대한 투자 결정 과정을 감사하여 문제가 있다고 그 펀드 운용자를 징계하였다. 벤처투자 펀드는 그 속성상 몇 종목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평가는 시장평가지표와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개별 종목 투자 과정을 따지게 되면 펀드 운용자는 투자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일이 있게 되면 투자 자체가 위축되고 결정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로 인해 투자 행위 자체에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벤처투자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상환전환우선주(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RCPS)로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RCPS는 투자 후 그 회사가 상장에 성공하면 주식으로 전환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상장이 되지 않으면 채권으로 전환하여 이자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수단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은 여러 자산운용사에 자금 운용을 위탁하는데 A사는 RCPS에 투자하였는데 B사는 단순주식 투자한 경우를 상정해 보자. 감사원의 감사에서 B사에 왜 A사처럼 RCPS로 투자하지 않았느냐? 그로 인해 손실을 보았다면 B사가 잘못 투자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자산운용사가 PCPS로 투자하는 결과를 낳는다. 투자에 대한 자율적 의사 결정을 왜곡하고 시장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뿐만 아니라 검사의 기소에 따라 법적 처분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때 의사 결정이 적법 절차에 따른 것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의 판단 자체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대부분은 법원에서 판단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법원의 이런 판결 태도는 경영 판단의 원칙 때문이다. 경영 판단의 원칙은 회사법에서 경영의 전문가인 이사의 경영상 판단에 대해 비전문가인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자제하여야 회사가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를 하고 새로운 혁신이 등장한다는 시각이다. 사후적으로 결과를 보고 책임을 묻는 구조로 인해 공무원은 논란이 되거나 불확실한 것을 결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여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제 주기적인 정권교체에 따라 공무원에게 정반대의 정책을 요구하고 과거 정책을 부정하는 관행에 대해 보자. 정권교체에 따라 정부의 정책 목표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백지에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는 태도이다. 이럴 경우 새로운 정책은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기존 정책의 추진에 따라 새로운 관행이 형성되는데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누적된 행정경험을 무시하고 정책이 작동되지 않는 원인을 공무원이 새로운 정책에 저항하는 것으로 돌리고 공무원에게 그간의 정책을 부정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정책적 전문성이 사라지고 정권의 입장에 부합하는 태도를 보이는 공무원만이 살아 남는다. 영혼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공무원이 사라지는 이유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다. 이는 자율성과 전문성이 억압된 시스템의 결과다. 공무원의 결정을 경영 판단 원칙처럼 존중하고, 과도한 사후 감사로 억누르지 않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려는 관행을 줄이고, 자율적 합의와 협력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이 '영혼 있는' 존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신뢰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공무원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창의적이고 책임 있는 행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하버드대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헌법이라는 보호 장치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라 명명했다. 이는 단순히 법의 테두리를 넘어 권한을 절제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탄핵 정국은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한 단면을 드러냈다. 우리는 헌법과 제도의 한계에 직면했으며, 국민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규범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레비츠키의 경고처럼, 정치인들은 40년 동안 쌓아 온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권한의 남용과 무책임한 행정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고, 결국 사회적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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