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미키 17'(감독 봉준호) 푸티지 시사회외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봉 감독은 영화 '미키 17'의 주요 장면을 30분가량 선공개했다.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몰락하고 지구를 떠나려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불어나는 사채를 감당하지 못한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 '익스펜더블'을 직업으로 삼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간의 육신을 프린트하여 기존의 기억을 투입하는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벌써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고 복귀하려 하지만 그가 죽은 것으로 오해한 국가가 18번째 미키를 프린트하며 혼란을 겪게 된다.
영화 '플란다스 개'를 시작으로 '괴물' '옥자' '기생충' 등에 이르기까지 봉 감독은 영화에 사회 문제와 소외 계층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다.
봉 감독은 "주인공이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왜 불쌍한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직업 자체가 '죽는' 일이다. 반복적으로 죽어야만 한다. '미키 17'이라는 건 17번째 죽었다는 이야기다. 몸은 계속 프린트가 되는데 기존 SF 장르 속 클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프린트해서 서류 뽑듯 인간을 출력하는 거다. 그 자체만으로도 비인간적이다. 가장 극한의 처지에 있는 노동자 계층인데. 그러다 보니 '계급' 문제로도 스며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영화가 거창하게 계급 간 투쟁을 다루거나 정치적 깃발을 드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친구가 얼마나 불쌍한지.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는지 담는다. '미키'의 성장 영화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시튼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7번째 미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봉 감독은 17번째 미키의 이야기를 다룬다.
봉 감독은 "원작보다 10번 더 늘렸다. 다양하고 일상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인물이었으면 했다. 노동자의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작이 한국에도 출간됐다. 원작에서는 '미키'가 역사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지적인 이야기도 하는 편이다. 원작 자체가 SF 하위 장르 중에서도 하드 SF다. 과학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저는 과학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 빼고 땀 냄새 나는 인간 이야기로 각색했다. 그 과정에서 '미키'는 노동자가 되었다. 위험한 산업에 투입되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과거사를 더 단순하게 만들었고 더 외로운 느낌으로 그려보았다. 관객들이 '미키'를 더 불쌍하고 가엽고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작 속 시대상이 아주 먼 미래인 데 반해 영화 속에서는 근 미래적으로 설정되었다. 봉 감독은 "인간 냄새를 원해서"라며 시대적 배경을 앞당겼다고 전했다.
그는 "아마 여러분은 생생하게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듄'처럼 서사적이고 먼 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SF도 좋지만, 저는 눈앞에 닥친 근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간 냄새를 원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2015년도만 해도 우리가 챗지피티와 대화할 거로 생각지 못하지 않았듯이. 지금도 당장 2~3년 뒤를 예측하기 어려워졌으니까. 이 영화도 SF 장르지만 여러분이 겪게 될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극본 자체가 정말 재밌었다. 처음 읽었을 때 명료하게 느껴졌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면의 심리 상태가 복잡적으로 느껴지더라. 인간적인 부분도 느낄 수 있었다. '미키'는 자신감이 없는 아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도 없다. 멍청하기도 하다. 주변에 버릇이 나쁜 개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교육이 안 되어있었다. 집에서 오줌도 막 누곤 한다. 훈련을 시키려고 하면 뒤로 누워서 애교를 부려버린다. 교육이 되지 않으니 변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미키' 같더라. '미키'는 17번을 죽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고 이제야 다르게 살아야 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패티슨은 디테일에 강한 봉 감독과의 협업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은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걸 제시하고 프로세스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보통의 배우가 그렇지 않나 싶다. 사냥하듯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거다. 그래서 봉 감독님의 영화가 눈에 띄었다. 이런 스타일을 가진 감독과 작업한 적이 없어서 인상 깊었다. 체계적이고 자신감도 있고 생각대로 실행한다. 철저하기 때문에 시퀀스도 짧게 찍었다. 몇 주 되니 익숙해졌고 자유를 느꼈다. 현장 편집도 즉석에서 해주어서 정말 놀랐고 그 점이 굉장히 좋았다"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았지만 무척 좋은 배우들과 호흡하여 즐거웠다. 두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와의 작업이 즐거웠으니 보는 이들도 즐겁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우리가 즐겁게 촬영한 만큼,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재밌게 봐주길 바란다"고 거들었다.
한편 2월 28일 한국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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