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한국의 정치와 기업 문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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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5-01-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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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스테니우스 Reddal CEO] 



한국이 불확실성을 넘어 밝은 미래로 가는 방법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에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 사회는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기업인들은 국내 법체계가 선진국 수준에 부합하는지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이탈하고,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 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이미 악재로 작용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탄핵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앞에 속수무책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반도체, 조선업 등 일부 산업에서 미국은 단기적으로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생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왔기 때문에 나름의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이 정치와 기업 문화 측면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겉으로 그럴싸한 미봉책에만 매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필요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면,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에는 상당히 큰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바로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사업 규모를 막론한 모든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와 중소기업(SMEs)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력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중소기업은 구체적으로 중소규모 기업 중에서도 보통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는, 기술 중심의 글로벌 확장성을 가진 기업을 말한다. 


기적을 넘어 새로운 경제 모델로

전후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나온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명백한 이유가 있다. 일례로 재벌기업 중심의 기업 환경이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을 저해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며, 전체 노동력의 83%를 고용하고 있다. 즉 이들 중소기업이 거대한 인적 자원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한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은 내수 시장에 의존하며 OECD 평균의 약 60% 수준에 그치는 낮은 생산성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 레달(Reddal)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며 이들의 성장을 지원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과거 한국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끌었던 경제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가족 경영 재벌기업은 계열사 간 상호 출자로 얽혀 있어 기업의 의사 결정권이 소수의 오너 일가에 넘어가 있다. 이들이 대주주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이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도 개선의 여지 많다.

재벌 체제에서는 회장이 경영 전반을 주도하고, CEO는 서구식 COO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기업을 운영하는 동안 이사회는 오너 일가에 충성하는 인물로 구성된다. 이런 구조 때문에 대기업을 소유한 오너 일가가 주주 가치를 훼손하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등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저평가된 상장 기업의 리스크를 키우고, 외국인 투자가 일시적으로 위축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결국 기업 경영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반 주주들이 대신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자본시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이 같은 재벌 모델과 폐쇄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어느 정도 장점이 있었다. 시장 메커니즘보다 빠르게 자본을 배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발달한 자본시장에서는 이 같은 재벌 모델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비효율적인 자본 배분에 대한 리스크가 높아지고, 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명백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현국 경제 전반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중소기업에서부터 협력업체, 부품업체 등 공급망까지 재벌기업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혁신과 인재가 재벌에 집중되고,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상위와 하위 가구 간 소득 격차가 심화하면서 사회 전반에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소득 불평등을 체감하는 상황에서 저출산 같은 만성적인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놀랍지 않은 결과다.

한국 경제가 재벌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늘 어렵다. 정부는 2035년까지 1% 미만의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현재의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변화는 필수적이다. 물론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부가 과감한 조치를 주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국가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변화는 언제나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비즈니스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업에서 부실한 가버넌스가 비효율인 자본 배분, 가치 창출 저해, 불안정한 생태계를 초래하는 것처럼,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실한 정치는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의사결정을 초래해 국가의 잠재력 제한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실한 정치’란 최근 한국 정치에서 나타난 ‘강력한 지도자가 지배한다(strong person rules)’는 사고방식과 편향된 가버넌스를 말한다.


우수한 기업 가버넌스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바람직한 기업 가버넌스란 어떤 것인가? 우수한 가버넌스는 기업의 의사 결정권을 독립적이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이사회에 맡기는 데서 출발한다. 이때 이사회는 주주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사회는 CEO를 감독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분산시키기보다는 특정 사업에 집중한다. 이는 그것이 수익성을 높이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 효과적인 운영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더 이상 여러 산업과 전체 공급망을 지배하려 하지 않게 되면서, 중소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미국, 일본, 독일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주주 수익률에 집중하는 좋은 가버넌스를 통해 기업은 최대 30%의 기업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국내외에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고, 해외 시장 진출 기회를 높이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업가 정신을 촉진해 경제 성장을 더욱 가속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한국 시장 전체에서도 약 10~15% 정도의 가치 상승이 가능하다.

나는 기업 가버넌스가 개선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한국에 오기 전, 모국인 핀란드에서 기업 가버넌스 개혁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핀란드 기업의 가버넌스는 형편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많은 기업이 재정적 위기에 처하면서, 핀란드 시장에서 자본 관리 방식은 물론 기업 가버넌스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 당시 핀란드에서는 상호 출자와 사우나, 사냥 여행 등에서 형성된 사적인 경영 네트워크가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은 독립적이고 투명한 이사회 리더십으로 대체되었다. 기업 내의 “예스맨”들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더 많은 여성과 외국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또, 자본을 쌓아두는 대신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했다. 

당시 큰 충격을 준 핀란드 기업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 붕괴조차도 핀란드 경제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다. 이 사건은 핀란드의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스타트업 생태계는 핀란드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전환 과정이 고통 없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변화 과정에서 부실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 결과, 핀란드 경제는 더 강력한 기업 부문과 함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부문을 보유하게 되었다.


한국이 변화를 수용하는 방법

한국은 이미 기업 가버넌스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를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핀란드 사례처럼 위기가 변화를 촉진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전환을 통해 보다 온건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위기가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CVP)’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재벌과 투자자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영 체제하에서 재벌은 개혁을 수용할 유인이 거의 없는 반면,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기업들이 주주 가치를 우선 하도록 강제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한국 법체계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는 기업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변화와 혁신을 수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법적 시스템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 법은 이사회의 의무가 주주보다 회사, 종종 소수의 경영진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마치 대통령경호처의 의무가 정부나 사법 당국이 아닌 대통령 개인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법은 경영권의 허점을 막고, 합병 규제를 강화하며, 상호 출자를 법적으로 규제해 기업 경영진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이사회 구성원이 주주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주주의 권리를 보다 명확하게 보호해야 한다.

핀란드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업 가버넌스 개선을 위한 법 개정에 대한 반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은 한국의 대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벤처캐피탈과 사모 투자자들에게 더 중요하다. 따라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는 것은 전체 비즈니스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히 기업 혁신과 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정부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산업 정책, 예컨대 5개년 계획과 같은 방식으로는 기업의 가버넌스를 개선할 수 없다. 우수한 기업 가버넌스와 체계적이고 사실 기반의 전략이 기업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자리 잡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모든 국민의 삶을 질을 향상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정치적 갈등과 드라마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국가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과제다.

필자 소개 

퍼 스테니우스(Per Stenius)는 2010년 핀란드에서 경영 컨설팅 기업 레달(Reddal)을 설립한 창립자 겸 CEO로, 액센츄어와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벤처 캐피털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경영 전문가이다. 기업 가버넌스와 전략 수립을 전문으로 하며, 다수의 스타트업 창업 및 경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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