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예상보다 고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정책 충격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한 번에 0.4%포인트 낮췄다. 만약 미국발 관세전쟁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추가 하락해 1.4%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미국 신정부 관세정책의 글로벌 및 우리 경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미국 신정부의 관세정책 강도는 취임 전 지난해 11월 한은의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추가 10%의 대중(對中) 관세는 기존 전제와 비슷하지만 캐나다·멕시코에도 불법 이민·마약 유입 등을 명분으로 25%의 높은 관세를 이른 시기에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트럼프 2기 정부가 중국 외 무역적자 상위국에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유연한 협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작년 11월 (한은) 전제와 다르다"고 밝혔다.

한은의 이번 새 전망치인 1.5%의 '기본 시나리오'는 미국이 중국에 현 수준의 관세를 2026년까지 유지하고 다른 주요 무역 적자국에는 그보다 낮은 관세를 올해 중 부과하지만 협상 진전에 따라 2026년부터 점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는 경우를 가정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미국이 올해 말까지 중국을 포함한 주요 무역 적자국에 관세를 높여 부과한 뒤 2026년까지 유지하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고강도 보복관세로 대응하는 상황을 반영했다.
한은은 "미국과 여타국 간 상호 보복 조치가 반복되는 비관 시나리오에서는 세계 교역이 급격히 위축되고 무역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져 국내 수출과 투자가 크게 둔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가 반영되면서 우리 경제의 주춧돌인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당초 전망 800억 달러를 밑도는 750억 달러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990억 달러)보다 240억 달러 뒤처진 수치다.
한은은 "미국의 예상보다 빠른 관세정책 추진으로 통관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상품수지 흑자폭이 지난해보다 축소되겠으며 서비스수지는 교역 둔화에 따른 운송수지 악화 등으로 적자규모가 소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수출 증가율은 0.9%로 예상하면서 이전 전망(1.5%)보다 0.6%포인트나 낮췄다. 정보통신(IT) 부문은 수출이 증가세를 지속하겠지만 비(非)IT 부문 감소가 예상돼 성장률을 내렸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IT품목은 고성능 반도체(HBM)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비IT품목은 석유제품과 화공품, 철강금속 등을 중심으로 감소세를 보일 전망이다.
수출 뿐 아니라 내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비상계엄 이후 경제 심리가 크게 악화하면서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은 1.4%에 그칠 전망이다. 기존 예상치(2.0%)보다 0.6%포인트 낮아졌다.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전망도 큰 폭 하향조정됐다.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은 종전보다 1.5%포인트 내린 -2.8%로, 설비투자 증가율은 0.4%포인트 내린 2.6%로 예상됐다. 건설투자는 수주·착공 위축 영향이 컸다.
한은은 "정치 불확실성이 점차 해소되고 금융여건 완화의 영향도 나타나면서 내수가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미국 신정부 관세정책이 예상보다 강하게 추진되는 등 통상환경 악화가 우리 경제의 성장흐름을 제약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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