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BOKonomics] 이창용 한은 총재 '스테이블코인 논란' 분노한 이유

  • '한강 프로젝트' 좌초 위기설 작심 발언

  • "한은, 스테이블코인 가장 먼저 적극 도입"

  •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19세기 혼란 온다"

  • "만장일치제 제안, 인허가권 때문 아냐" 반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강 프로젝트는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아닙니다. ‘한강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도입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한국은행의 CBDC 중단, 포기 등의 보도가 나오는 걸 보고 화도 나고 오해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에는 화폐에 프로그램을 집어넣을 수 있는 ‘디지털 화폐’가 필요합니다. 이런 필요성을 알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한은처럼 미리 적극적으로 준비해 온 기관은 없을 겁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CBDC를 둘러싼 오해들이 증폭되는 데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은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무조건 반대하며 인허가권에만 눈독 들인다는 외부 시선에 대해 작심 발언을 이어간 것이다.

실제 한은은 2023년부터 발 빠르게 디지털화폐 도입을 준비해왔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미리 예견하고 2023년 5월부터 이미 특허청에 △KRDW △Korea Digital Won △Digital Won △디지털원 등 44건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시 한은이 발행하는 법화(원화)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2023년 말께는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10월 활용성 테스트를 소개하면서 윤성관 한은 디지털화폐연구실장(당시 한은 금융결제국 부장)은 "화폐에 프로그래밍 기능을 탑재했을 때 어떤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은행이 '예금 토큰'을 활용해 각종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한강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된다. 
 
김소영 금융부위원장가운데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 통합별관에서 열린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왼쪽부터 김 부위원장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위원장 20231004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김소영 금융부위원장(가운데)이 2023년 10월 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통합별관에서 열린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 공동 기자설명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왼쪽부터), 김 부위원장, 이명순 금융감독원 수석부위원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강 프로젝트' 좌초 위기?···'스테이블코인 붐' 부담 느낀 은행들   
한은은 지난 4월부터 국내 7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과 본격적으로 실험에 돌입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코인이 아니라 개인의 예금을 디지털화한 것이 핵심이다. 1차 테스트를 이달 말 마무리하고 연말쯤엔 개인 간 송금, 결제 가맹처 확대, 인증 방식 간편화 등을 반영해 2차 후속 테스트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2차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3차는 상용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붐이 갑작스레 불면서 그동안 진행해온 관련 사업들이 수세에 몰려 좌초 위기에 놓였다. 함께하던 은행들이 "구체적 상용화 계획 등이 없는 상태에서 비용 부담만 너무 크다"며 등을 돌리면서다. 은행들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염두에 둔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발의한 상황에서 CBDC 사업에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 총재는 "중단이나 보류, 포기가 아닌 일시정지 상태"라며 "1차 테스트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비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가 갑자기 확 퍼지니까 한은 중심의 시스템이 실제로 도입될 수 있는 거냐, 법적으로 확실히 비은행이 아닌 은행 예금토큰 중심으로 가는 거냐, 확답이 있어야 2차 투자가 가능할 것 아니냐 등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금토큰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중) 법으로 확정하는 건 한은의 권한 밖이니 은행장들을 만나 직접 설명하는 정도면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며 "정부가 정책을 어느 쪽으로 펼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법도, 규제도, 감독권도 없는 기관인 한은을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의 예금토큰에 대한 로드맵이 없다,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 등의 지적에 대해선 강하게 반박했다. 이 총재는 "은행들은 평균적으로 40억원씩 부담했으며 한은도 약 170억원을 투자했다"며 "로드맵이 없었다는 것도 (중단의) 이유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표한국은행
[표=한국은행]
"19세기처럼 혼란 온다"…비은행 스테이블코인 부작용 강조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표하면서도 그간의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비은행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은행권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면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제약받고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자본유출과 환율 변동성 등 외환 관련 리스크가 커지고 한은의 화폐주조차익이 민간 업자에게 이전되는 점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대통령도 말했듯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다수의 비은행 민간기관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기관별 화폐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9세기 민간 화폐 발행이 활발했던 시기의 혼선이 반복될 수 있고 통화정책 수행이 어려워 결국 중앙은행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며 "자본금이 10억원인 회사가 발행하는 것과 은행이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같다고 할 수 없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자유은행 시대(1837~1863)를 언급한 것이다. 당시 미 연방정부가 통일된 통화제도를 갖추지 못해 민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지폐를 발행하면서 가치가 없는 화폐가 난립했다. 지폐를 발행한 후 도산하는 은행들이 속출했고 이 과정에서 한 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가치가 오르는 현상도 발생했다. 결국 미 연방정부가 1863년 국가은행법을 제정해 국가은행만 지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 난관을 극복했다.

외환 자유화 문제와 상충하는 데다가 은행 산업 구조의 급변화도 우려했다.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나오면 외환 자유화 속도가 심화된다"며 "금융산업에는 좋겠지만 국민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급결제 업무를 비은행 기관들이 하게끔 허용해주면 은행들의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비은행 역시 '동일 업무 동일 규제' 원칙으로 은행에 해당하는 굉장히 강한 규제를 모두 받아야 하는데 과연 받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금융통화위원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만장일치제 제안, 인허가권 때문 아니다" 반박
한은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국정위원회에 비은행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단계에서 한은을 포함한 유관 기관의 만장일치를 거쳐 허가 여부를 가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령인 지니어스법상 '스테이블코인 인증심사위원회'(SCRC)를 근거로 들었다. 지니어스법은 비금융 상장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고 할 때 SCRC의 만장일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SCRC는 신규 스테이블코인을 심사하는 독립적인 위원회로 미 재무부 장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으로 구성된다.

이 총재는 한은이 금융위원회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허가권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인허가권을 받으려는 것처럼 오해하는데 전혀 아니다"라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니까 국민 전체와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입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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