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대관 업무는 국내외 정부·입법기관을 상대로 한 일종의 로비 활동으로, 최근 트럼프발(發) 관세 폭격과 국내 정권 교체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기업별로 미국의 관세 정책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미 라인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는 정권 교체 후 반(反)기업 정책 추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관 조직 재정비에 분주한 상황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 대통령 1인이 모든 걸 결정하는 '톱다운' 방식 행정이 득세하면서 기업들의 협상 여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북미에서 대관 활동을 하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과거처럼 워싱턴 정계의 굵직한 인물을 영입해 그들의 인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리스크에 도저히 대응할 수가 없다"며 "'변칙'과 '파격'으로 요약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통법 때문에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요 기업들이 국내외 대관 인재 발탁에 주력하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이 영입한 드루 퍼거슨 신임 워싱턴사무소장은 5월 1일부터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의회, 국내 글로벌 대관 조직인 GPO(Global Policy Offic)실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계약한 로비 업체 '콘티넨털 스트래티지'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딸인 케이티 와일스가 소속된 업체다. 이 업체는 트럼프 1기 때 미주기구(OAS) 대사를 지내고 지난해 대선 캠프에서 트럼프 대통령 수석 메신저로 활약한 카를로스 트루히요가 설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 측과도 밀접한 관계라 지지부진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주요 보직에 외국인을 전진 배치한 것도 변화된 지점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치니를 디바이스경험(DX)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사장), 소피아 황-주디에쉬 전 토미 힐피거 북미 대표를 리테일 전략 부문 글로벌 총괄 부사장에 앉혔다. 삼성전자가 외국인을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대미 활동 강화에 주력 중이다. 지난해 북미 대관 컨트롤 타워인 'SK아메리카스'를 출범하고 대표직에 그룹 미주대외협력 총괄을 맡아온 유정준 SK온 부회장을 임명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역임한 폴 딜레이니 부사장도 SK아메리카스에서 북미 대관 총괄을 맡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마이클 쿨터 전 미 국방부 차관보 대행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해외사업 총괄 담당 사장으로 영입했다.
철강 관세 이슈에 맞닥뜨린 포스코그룹은 앞서 북미지역 대표법인인 포스코아메리카를 지난 2023년 애틀랜타에서 워싱턴DC로 이전한 바 있다. 현재 15명 정도 인력을 운용 중이다.
지난달에는 국내외 통상 환경과 정책 변화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장 직속으로 통상 관련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하는 '글로벌통상정책팀'을 신설했다. 해당 팀 수장으로 그룹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하던 김경한 커뮤니케이션본부장(부사장)을 기용했다. 김 부사장 후임에는 그룹 자회사 대표가 임명됐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대통령이 없는 (리더십 공백) 상태라 기업들도 트럼프 정부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인 등 외국인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그룹 관계자는 ''트럼프 관세로 미국 수출이 막히고, 국내에서는 정권 교체 가능성과 줄줄이 대기 중인 반기업 법안 등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 정권도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는 만큼 당분간 대관 업무가 중요도 1순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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